어둠이 깔리는 봉평에서 넋을 놓고 있다 보니 휘영청 떠오르는 달의 낌새도 채지 못했다. 촉촉한 달빛 아래 흰 꽃단지 헤치며 걷는 장돌뱅이 허생원.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그는 젊은 날 물레방앗간에서 마을 처녀와 어쩌다 한번 정을 통한다. 하얀 꽃밭 속에서 이루어진 달빛 사랑. 그 후로도 오랫동안 달빛 어린 길마다 소복이 쌓이던 한숨. 생애 꼭 한번 있었던 사랑. 그녀의 이야기로 가슴이 뛰던 장날의 허생원이 내 젊은 날인 듯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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