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7년을 기다린 관객들의 의지는 달랐다. 28~30일 열린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승자는 관객들이었다. 갖은 악조건 속에서도 7년 만에 열리는 대형 록 축제에 바지 가랑이 걷어붙이고 장화를 신는 정도의 수고는 아끼지 않았다. 하늘도 감동한 듯 공연 첫 날 퍼붓던 비도 이튿날 오후부터 멈추었다. 비는 더 이상 관객들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밤낮으로 9만평 대지를 뜨겁게 달군 3만여명의 열혈 록 팬들, 그리고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멋진 공연을 펼친 아티스트들. 과연 이들은 2박 3일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공연장 곳곳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록生록死!"라고.
● 캠핑촌 사람들… "내가 록 페스티벌의 주인"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열혈 관객들은 캠핑촌 사람들이었다. 공연 시작 전날인 27일 오후부터 텐트를 메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만 50여명. 둘째 날까지 250개가 넘는 텐트가 야영장을 가득 메웠다. 제주도에서 인천까지 13시간 동안 배를 타고 혼자 왔다는 고등학생 김진철(17) 군은 "록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공연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워 힘든 것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휴가를 냈다는 군인 김인재(22) 씨는 "고참에게 부모님 뵈러 간다고 휴가를 받았다"며 "내가 록 페스티벌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함철호(35) 씨는 "3일 동안 캠핑촌에서 많은 사람들과 록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앞으로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처럼 한국 록 문화의 자존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캠핑촌은 공동체를 형성했다. 공연이 없는 오전은 대체로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등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오후 공연이 시작되면 진흙바닥에 눕거나 진흙싸움을 하고 캠프파이어를 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이로 인해 1인 1실 샤워장도 밤만 되면 인기 폭발. 도난 및 안전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10여명의 경찰과 아르바이트생들이 구역을 나눠 순찰을 돈 덕분이다.
● 무대 위 밴드들… "우리도 진흙 속에서 뒹굴고 싶다"
첫 날 오프닝 무대에 올랐던 미국 출신의 록 밴드 '예 예 예스'부터 마지막 날 피날레를 장식한 '프란즈 퍼디난드'까지 무대를 수놓은 아티스트들은 진흙 속 관객들과 혼연일체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 예 예스'는 한국 축구팀의 응원구호인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음악 속에 삽입했다. 박자는 엉망이었지만 한국팬들을 위한 성의에 관객들은 환호했다. 미국 록밴드 '더 스트록스'의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는 "대학생 때 학교 기숙사의 한국인 룸메이트로부터 들었던 노래"이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우리들만의 추억'을 짧게 부르기도 했다.
가장 큰 환호를 받은 것은 4인조 힙합 그룹 '더 블랙아이드피스'. 이들은 'COREA'라고 쓴 머리띠를 메고 나왔으며 앙코르 무대도 30분 넘게 펼쳤다.
무대 뒷 편에서 만난 밴드 멤버들은 진흙탕에서 환호하는 관객에게 찬사를 보냈다. '더 스트록스'의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는 "비를 맞으며 환호하는 관객들을 위해 우리도 양동이에 물을 받아 뒤집어 쓰고 싶었다"며 했고 '더 블랙아이드피스'의 여성 보컬 퍼기는 "관객들과 함께 땀이 범벅이 되고 진흙이 몸에 묻어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 페스티벌 속 패션 리더들… "나를 뽐내준 건 장화"
아무리 날씨가 궂고 조건이 좋지 않아도 '스타일리스트'의 감각은 죽지 않는 법. 록 페스티벌의 '패션 리더'들이 선택한 코드는 '장화'였다. 이들은 핑크, 빨강 등 형형색색의 장화부터 꽃무늬 줄무늬에다 손수 만든 '튜닝 장화'까지 신었다.
대학생 김진아(21)씨는 "동대문에서 1만원주고 산 흰 장화 위에 평소 좋아하는 '그래피티'를 그려넣었다"고 말했다. '플라시보'라고 적힌 장화를 신은 직장인 유정아(29) 씨는 "록 밴드 '플라시보'를 위해 홍대 앞에서 5만원을 주고 개별 주문한 것"이라며 "패션도 록 스피릿의 하나"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이 기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방종임(성균관대 국문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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