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에 있는 타워호텔. 댄스그룹 ‘샵’의 전 멤버 이지혜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신곡이나 뮤직비디오가 나와야 할 이 자리에 그녀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나타났다. 최근 싱글을 발표한 뒤 ‘가슴 성형설’에 휘말렸다는 그녀는 “이래도 가슴 성형설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초음파 검증도 받겠다”고 말했다. 이날 그녀는 비키니를 세 벌이나 바꿔 입었다.
이날 오후 비키니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지만 누리꾼들은 냉담했다. 누리꾼들은 “가슴 성형설을 누가 제기했느냐”며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여가수의 가슴 성형설은 올해 초 별에게도 있었다. 그녀는 3집 ‘눈물샘’을 발표할 무렵 스포츠지 등에서 가슴 성형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예전에 발라드 가수로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가슴을 숨긴 탓으로 이번에 성형설이 퍼졌다”는 것이다. 이후 별은 인터넷 사이트 검색 순위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여가수들의 인기 잣대가 음악이나 가창력이 아니라 가슴의 크기가 된 셈이다. 이 논란으로 인해 그녀들의 음악은 가슴에 눌려 버렸다.
그뿐만 아니다. 여성 그룹 ‘슈가’의 아유미는 일본 여가수 고다쿠미(倖田來未)가 불러 인기를 끈 ‘큐티 허니’를 리메이크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MBC ‘쇼 음악중심’의 컴백무대에서 부른 이 노래조차 립싱크였다. 아유미의 소속사는 “화려한 댄스에 중점을 두고 무대를 꾸몄다”고 말했으나 “노래보다 중요한 게 춤인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것이 지난 주말 한국 가요계의 현주소다. 같은 시간 인천 연수구 송도에서 열린 ‘인천 펜타 포트 록 페스티벌’에는 많은 해외 아티스트가 참가했다. 폭우 속에서 진행된 무대에서 이들은 가슴이나 춤으로 관객에게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기타만 울렸던 영국 록 밴드 ‘플라시보’, 땀과 화장이 범벅된 ‘더 블랙아이드피스’의 여성 보컬 퍼기 등. 이들에겐 이지혜만 한 가슴도 없었고 아유미의 격렬한 춤도 없었다. 하지만 3만여 관객은 그들의 음악에 기립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에 비하면 한국의 일부 가수에게는 노래가 없는 듯했다. “가수에게 중요한 것은 노래, 그리고 그 노래에 대한 자존심뿐”이라는 록의 대부 신중현 씨의 당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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