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괜찮습니다. 저도 기다리면서 순서를 지켜야지요.”
“괜히 그러지 마시고, 빨리 오세요. 그게 저희에게 편해요.”
우리 공동체에서는 매주 주일이면 점심때 나눔 식당을 운영합니다. 많은 분이 이용합니다. 홀로 계시는 어르신부터 꼬마들까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저도 주일이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식사하기 전에 꼭 봉사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배식할 때 제가 줄을 서면 꼭 순서를 뛰어넘어 먼저 하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줄을 서 기다리는 것이 좋은데, 신자들은 제가 줄을 서는 것이 불편한 모양입니다. 물론 사제를 존경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든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주어진 특권의식이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사제인 저로서는 유난히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특히 공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이 세상과 이웃에게 봉사하도록 주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집중호우로 많은 분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실의에 차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와중에 몇몇 지도층 사람이 고통과는 무관한 행동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공인(公人)을 가리키는 공(公)은 팔(八)을 벌려 열려 있는 모습입니다. 공인에게 주어진 능력과 특권을 다른 이들을 향해 나누지 않고, 그 방향이 자신을 향해 있게 되면 세상과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핵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도 사제에게 주어진 특권을 제대로 사용하도록 마음을 모아 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일이면 즐거운(?) 실랑이를 벌일 것입니다. 그리고 섬김을 강조하신 주님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코 10, 43∼44)
김 철 호 신부 천주교 혜화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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