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자르토리스 부인의 사랑

  • 입력 2006년 8월 5일 03시 00분


◇자르토리스 부인의 사랑/엘케 슈미터 지음·김태한 옮김/200쪽·9800원·황소자리

많은 걸작은 바람난 부인들에게 빚을 졌다. ‘안나 카레니나’ ‘테스’ ‘보바리 부인’ ‘채털리 부인의 사랑’…. 여기 한 부인이 있다. 제목부터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원제 Frau Sartoris·자르토리스 부인) 이 책의 주인공, 자르토리스 부인이다.

테스처럼 첫 남자에게 배신당했고 보바리 부인처럼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에 지친 안나 카레니나처럼 무료한 삶을 보내다가 앞선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바람이 난다. 2000년 독일에서 이 소설이 나왔을 때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이 “모든 극과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을 위한 오마주”라고 찬사를 보낸 것처럼, 이 책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작품 속 많은 ‘부인’들을 다시 한번 불러낸다.

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남편과 마음이 잘 맞는 시어머니, 예쁘장한 딸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자르토리스 부인.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첫사랑의 상처를 지울 수 없다. 20여 년 전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첫사랑 남자가 약혼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쫓기는 마음에 부랴부랴 결혼한 뒤 벌써 나이 마흔 살에 이르렀다.

중년에 다시금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자르토리스 부인. 그러나 상대는 유부남, 그것도 유산이 많은 아내와 잘 자란 두 아들, 시청 문화국장이라는 타이틀까지 갖고 있다. 잠깐 한눈은 팔아도 야반도주를 저지를 리 만무하다. 남편에게 편지까지 써 놓고 사랑의 도피를 꿈꾸지만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딸이 중년 남자의 애인 노릇을 한다는 걸 알았다. 부인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얼핏 진부한 듯 보이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구성이 독특하다. 자르토리스 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들려주는 중간 중간에, 도시에서 벌어진 뺑소니 사고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이 삽입된다(부인의 사연과 뺑소니 사고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데, 이런 점 때문에 평범한 연애소설이라기보다 미스터리물 같은 느낌도 준다).

신파와 낭만을 철저하게 걷어낸 문체도 매력적이다. ‘자르토리스 부인의 불륜’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긴 어렵겠지만, 눈물 섞인 목소리가 아닌 담담하고 체념적인 고백은 ‘많은 것을 갖췄으면서도 하나를 갖지 못해’ 한없이 쓸쓸한 심정을 잘 전달해 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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