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도엔 핑크 시티가 있는데 자이푸르야.”
“일본 사람들은 차 마실 때 무릎을 꿇고 앉는대. 이렇게.”
지어낸 이야기로 가득한 동화만 동심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다. 가본 적 없는 먼 나라 혹은 이웃 나라의 사는 모습들도 아이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한다.
‘○○의 신나는 세계모험’ ‘△△에서 보물찾기’ 같은 시리즈는 어린이용 교양서에 대한 수요를 읽고 외국 풍물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낸 학습 만화들. 이 같은 책들이 가격에 비해 전달하는 정보가 적고 단편적이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면 ‘에스키모 아푸치아크의 일생’을 권하고 싶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지식 그림책 ‘지식 다다익선’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작가는 프랑스의 극지 탐험가. 에스키모 하면 이글루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는 독자들에게 1년 2개월간 그린란드의 에스키모와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전형적인 어로와 수렵 생활을 세밀하게 그려 보인다.
주인공 아푸치아크 가족의 집은 눈으로 만든 이글루가 아니다. 돌 오두막에서 바다표범이나 곰의 살코기를 화로에 구워 먹으며 겨울을 난다. 한겨울이지만 오두막 안에서는 모두 웃통을 벗고 있다. 바다표범 기름으로 피운 불 덕분이다. 양동이에 담긴 얼음덩이가 자리끼다.
바다에 얼음이 둥둥 떠다니지 않는 여름은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온 가족이 모두 탈 수 있는 커다란 배 ‘우미악’을 만들어 여행을 떠난다. 아푸치아크 가족은 우미악에 바다표범 가죽을 둘둘 말아 싣고 덴마크 사람의 가게에 들러 모직 스웨터, 옷감, 쌀, 설탕과 바꾼다. 날이 어두워지면 육지를 찾은 뒤 우미악을 뒤집어 임시 잠자리를 만든다.
그림은 소박하지만 정교하다. 에스키모 성인 여성의 머리 모양이나 털 부츠, 숟가락 대신 사용하는 손잡이 달린 둥근 칼, 동물 뼛조각으로 바다표범 무늬를 넣어 만든 나무 그릇 덕에 이국적 생활상이 생동감을 얻는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건조한 정보만 던져 주고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책을 덮고 나면 보드라운 바다표범 가죽 위에서 태어나 곰 가죽에서 삶을 마치는 에스키모가 아릿한 여운을 남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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