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모아놓고 앉아 있다.
삶이 이제 겨우 요것밖엔 남지 않았다는 듯
최소한 작게, 꼬깃꼬깃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귀를 훨씬 지나 삐죽 올라온 지게 같은
두 무릎, 그 슬하에
동글동글 이쁜 것들, 이쁜 것들,
그렇게 쓰다듬어보는 일 말고는 숨쉬는
것조차 짐 아닐까 싶은데
노구를 떠난 거동일랑 전부
잇몸으로 우물거려 대강 삼키는 것 같다.
지나가는 아낙들을 부르는 손짓,
저 허공의 반경 내엔 그러니까 아직도
상처와 기억들이 잘 썩어 기름진 가임의
구덩이가 숨어 있는지
할머니, 손수 가꿨다며 호박잎 묶음도
너풀너풀 흔들어 보인다.
-시집 ‘쉬!’(문학동네) 중에서》
옛말에 ‘무릎이 귀를 넘도록 산다’더니 저 할머니 평생 굽이굽이 아흔아홉 고개 거뜬히 넘었지만 이제 제 무릎고개 하나에 숨이 차는구나. 할머니에게도 애호박처럼 풋풋한 날들 있었으리라. 양 볼에 저승꽃 말고 분홍빛 복사꽃 피우던 날도 있었으리라. 지겟다리 같은 할머니 무릎 아래 푸르고 젊은 것들 찬란히 빛난다. 뜨겁던 여름날의 매미소리 잦아들면 모든 푸른 것들도 찬 서리 속으로 벋어 가리라. 겨우내 가파른 무릎 고개 지나 모든 늙은 것들 꽃잎으로 다시 오리라.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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