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

  • 입력 2006년 8월 12일 03시 01분


“은진은 강경 덕에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한때 번성했던 강경포구. 지금은 고깃배 몇 척이 매여 있는 작은 포구가 됐다. 사진 제공 황금나침반
“은진은 강경 덕에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한때 번성했던 강경포구. 지금은 고깃배 몇 척이 매여 있는 작은 포구가 됐다. 사진 제공 황금나침반
◇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 1∼3/신정일 지음/408∼476쪽·각권 1만6000원·황금나침반

우리 시대의 고산자(古山子)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신정일을 으뜸에 두겠다. 그는 25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 3만 리(약 1만2000km)를 걸었다. 강과 산 그리고 옛길과 마을 등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이 땅 안에 없을 정도이다. 그는 걸으면서 책을 보고, 또 걸으면서 원고를 쓴 사람이다. 그의 삶이 곧 길이고, 길이 곧 삶인 것이다.

그런 땀의 결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저서들을 쓰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그야말로 고산자의 길을 따라 가며 사랑하는 땅 ‘대동여’에 애정 어린 현미경을 들이댔다.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의 초점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총독부가 조선 8도의 지방 관제를 개편하면서 사라진 고을 90곳에 맞춰져 있다.

그가 바라본 풍경들에는 쓸쓸함과 분노, 애잔한 사랑과 연민이 가득하다. 그 현미경은 3가지 빛깔로 빛난다. 먼저 1권에서는 사라진 영화(榮華)를 다룬다. 한때 거대한 상권을 형성했으나 지금은 조그마한 젓갈 시장을 거느린 은진(강경포구)이나, 전라도 제일의 고을이었으나 동학농민운동으로 사라진 고부 등을 다루며 굴곡의 역사에 대한 울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힘든 길을 가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놓치지 않는다. 2권에서는 아름다워서 사라져 버린 고을의 이력을 깊이 있게 접근한다. 국토 개발이나 댐으로 사라진 충청도의 단양이나 전라도의 용담 같은 곳들이다. 이 책이 여행서를 닮은 역사서라고 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그의 빼어난 사진 솜씨가 이런 매력을 한층 더 높여 준다.

산과 물의 정기를 받아 인물이 나는 것이 틀림없다면, 저자의 관심이 사람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3권에서 다루는 충청도 연풍의 김홍도나 경상도 산청의 문익점, 그리고 전라도 능주의 조광조와 같은 인물 이야기가 그것이다. 단순히 인물에만 한정되지 않고 지역에 얽힌 전설 등을 소개한다. 이쯤 되면 우리 구비문학을 지리적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작업에 앞서 신정일은 ‘다시 쓰는 택리지’라는 전 5권의 저서를 낸 바 있다. 이중환의 인문지리서 ‘택리지’를 따라 걸으며 현대적으로 다시 쓴 것이다. 이번에 상재한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는 150여 년 전에 완성된 ‘대동여지도’에 현미경을 들이댔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 렌즈는 퇴색한 지도에서 벗어나 생생한 이 땅의 현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살피고 있기에 더 확연하게 비춘다.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현실에 불만이 있거나 막연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대동여지도는 이제 더는 지도가 아니다. 단지 역사적 기록일 뿐이다. 땅도 나이를 먹으면서 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과거의 거울로 우리 시대의 삶을 비추고 있기에 책갈피마다 마음 깊이 꽂히는 것 같다.

이희근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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