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의 동네 관찰 일기/박재철 글·그림/88쪽·1만2000원·천둥거인(초등 전학년)
자연은 마음 안에, 시간 속에 있다.
마음먹고 시간을 들여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남산이나 경기 수원의 광교산이 딱 그런 곳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지만 잊고 사는 곳, 잠시 관심을 갖고 찾아가면 수많은 보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남산숲에 남산제비꽃이 피었어요’는 이름을 말하면 소나무가 떠오르는 남산에 대한 책이다. 남산 소나무는 주로 남쪽 비탈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철갑을 두른 듯한’ 오래된 소나무는 찾기 힘들다.
반대로 북쪽 비탈로 들어서면 깊은 산속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하늘을 가득 채운 초록빛 신갈나무 잎사귀 덕분이다. 신갈나무숲 속에선 당단풍 음나무가 크게 자라고 생강나무 작살나무 진달래 국수나무 고비 같은 식물도 있다.
옛날에는 소나무숲이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대신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는 신갈나무가 남산 숲의 주인이 될 거란다.
숲 바닥에는 풀꽃들이 자란다. 봄이면 개별꽃 애기나리 은방울꽃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단풍취 맥문동 박주가리가 눈에 쏙 들어온다.
서양등골나물 개망초 서양민들레 가죽나무 미국나팔꽃 닭의덩굴은 남산에서 많이 발견되는 귀화식물. 남산 숲속 깊이까지 들어와 있는 귀화식물이 이름도 예쁜 남산제비꽃을 몰아내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물 한 모금 마셨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남산 숲은 메마르고 물이 부족한 곳이다. 옛날에는 남산에서 청계천으로 흐르는 개울이 10여 개나 됐다. 자동찻길과 산책길, 터널로 물길이 다 끊겨 버렸다.
드디어 남산 꼭대기. 동봉과 서봉 등 두 봉우리가 다소곳이 서 있다. 넓디넓은 서울이 내려다보인다. 북쪽을 보면 인왕산과 북악산. 그 뒤로 북한산도 보인다. 모두가 한데 이어져 녹색의 생태 띠를 이룰 수 있었으면…. 그러고 보니 남산은 외로운 생태섬이다. 아이는 어느덧 꼬마 환경론자가 된다.
여름에는 들에 풀이 정말 빨리 자란다. 개망초 토끼풀 이고들빼기 엉겅퀴 지칭개 털별꽃아재비 씀바귀꽃이 반긴다. 씀바귀꽃에서 보이는 주홍색은 꽃잎이 아니라 작은주홍부전나비다.
향기 좋은 칡꽃에도 꼬마꽃등에 꿀벌 콩풍뎅이 흰띠명나방이 몰려든다. 사마귀는 이 곤충을 잡아먹으려고 찾아오고.
길가에 딱정벌레 한 마리가 죽어 있다. 사람 발에 밟혔는지 몸이 으스러졌다. 아주 작은 개미들이 몸속을 드나든다. 둘째 날 좀 더 큰 개미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더니 넷째 날은 잔치가 끝났는지 딱딱한 껍데기만 남아 있고 모두 떠나버렸다.
너무 더워 숲으로 들어갔더니 자벌레, 솔박각시 애벌레, 으름밤나방 애벌레, 줄점불나방 애벌레가 나뭇잎을 먹느라고 바쁘다. 나뭇잎을 하나씩 뜯어보니 나무마다 잎 모양이 다르게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 가지가 잔뜩 떨어져 있다. 도토리거위벌레 짓이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를 찾아낸 다음 이리저리 살펴본다. 긴 주둥이로 구멍을 뚫기 시작하더니 40분 뒤 가 버렸다. 주워서 집에 와 잘라 봤더니 작은 알이 있다. 들어가는 곳은 좁고 알이 놓인 곳은 넓다. 도토리를 먹고 자란 애벌레는 땅속에서 겨울을 난다. 그래서 어미가 나뭇가지를 땅으로 떨어뜨린 거다. 우리 봄이가 바로 파브르였구나.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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