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前차관 경질 파문]문화부에 인사청탁 왜 몰리나

  • 입력 2006년 8월 12일 03시 01분


‘만원… 만원… 만원.’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 파문의 배경에는 유독 문화부에 몰리는 ‘인사 민원’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와 관광, 체육, 미디어를 관장하는 문화부에는 산하공공기관이 38개 있다. 그러나 실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관기관까지 합하면 엄청난 기금과 ‘자리’를 갖고 있는 매머드 부처가 된다.

역대 정권의 실세들이 대거 문화부나 그 전신 부서 장관으로 재직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2년 당시 신군부 핵심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제1대 체육부 장관에 취임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정권의 황태자’ 박철언 씨가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김영삼 정부에서는 청와대수석비서관을 지낸 주돈식 김영수 씨가 잇달아 문화체육부 장관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최대 실세였던 박지원 남궁진 씨가 문화관광부 장관을 거머쥐었고, 현 정권에서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열린우리당 정동채 의원이 자리를 이었다.

과거 정권 실세가 문화부를 넘봤던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자신이나 정권을 위해 뛰었던 ‘수족(手足)’을 관리하는 데 이만한 자리가 없다. 인사권이 미칠 수 있는 수백 개의 유관기관에 자기 사람을 심어 두고 간접적으로 조직을 장악하면 논공행상(論功行賞)과 이권(利權)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마사회와 같이 자금 여유가 많은 산하기관은 과거 정권 실세들의 표적이 되기도 해 ‘복마전’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국회가 마사회를 농림부 산하로 이관시키려 했을때 문화부가 반대한 것도 자리와 자금 때문이었다.

특히 정치권을 떠돌던 ‘정치 낭인(浪人)’들은 경제부처 등 전문성이 뚜렷한 부처나 산하기관을 피해 문화부의 우산 밑으로 몰려드는 것이 관례였다. 문화부의 한 전직 고위 간부는 “문화부 산하단체는 비전문가가 와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져 버렸다”며 “외부에서는 다른 부처보다 문화부의 이미지가 좋고, 적응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자들이 줄을 서다보니 전임 정권에서 임명됐던 기관장들을 조기 낙마시키기 위한 신경전도 치열했다. 2004년 청와대가 3년 임기를 채우지 않은 박기정 언론재단 이사장의 조기사퇴를 종용한 것도 좋은 사례.

특히 청와대의 경우 정권 창출에 기여했던 동지들의 구직(求職)에 나설 때 문화부가 가장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유 전 차관도 자신의 경질 배경에 대해 “당에서 나의 경질을 반대했음에도 (청와대가) 이렇게 한 까닭은 그들이 지금 처리할 게(인사 민원) 많은데 내가 있으면 그게 안 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정권의 임기가 후반기에 가까워질수록 낙하산의 유혹은 강렬해지기 마련이다.

외부 인사들이 눈독을 들이다 보니 문화부 장관의 내부 승진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실제로 1948년 정부수립 시의 공보처 시절부터 58년간 문화부나 그 전신을 거쳐 간 42명의 장관 중 차관에서 자체 승진한 경우는 두 사람에 불과하다. 그것도 1961년, 1980년 등 군사정변이 발생한 직후의 비상상황에서 자체 승진의 숨통이 트였을 뿐이다.

또 문화부 산하단체의 역할이 지역구 민원이나 선거에 직결된다는 점도 ‘문화부 인기몰이’의 원인으로 꼽힌다. 문화재청의 경우 지역구 내 사당이나 종교시설 관리와 연관되어 있고, 문화와 체육 관련 단체들은 문화예술인과 체육인들을 선거지원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돼 왔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