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쪽 유적은 흔적 찾기 힘들어
대학생 등 33명으로 구성된 탐방대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7박 8일간 ‘안중근 숭모회’와 본보 공동 주최로 안 의사가 활동한 중국과 러시아의 항일 유적지를 돌아봤다.
1900년대 초 안 의사가 중국과 러시아에서 항일운동을 벌일 때부터 하얼빈 의거 후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의 역정을 그대로 따라갔다. 속초에서 러시아 자루비노 항으로 간 뒤 열차편으로 훈춘(琿春)∼옌지∼하얼빈을 거쳐 다롄(大連)까지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안 의사는 옥중 자서전에서 “태극기를 펼쳐 놓고 왼손 무명지를 자른 뒤 생동하는 선혈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 글자 넉 자를 크게 쓰고 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불렀다”고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탐방대가 찾은 한인마을 터는 억새풀만 무성할 뿐 옛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 주가노프 다리 옆 잡초 속에 서 있는 단지기념비가 유일하게 독립투사들의 숨결을 전할 뿐. 이마저도 제대로 관리가 안 돼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탐방 길에 오른 박범수(명지대 4년) 씨는 “안 의사를 포함한 독립운동가 12명의 손가락이 이곳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라며 “이번에도 그 현장을 찾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김광시 숭모회 사무처장은 “하얼빈 의거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비만 오면 접근조차 안 될 만큼 관리가 엉망”이라며 “항일운동의 중요 유적지가 손실될 위기에 처했다”고 걱정했다.
○ 하얼빈 시의 ‘안 의사 챙기기’
하얼빈 시내의 안 의사 관련 시설물은 시 당국이 7월 한국주간을 맞아 대대적인 정비에 나선 덕에 예전에 비해 한결 충실해졌다.
지난달 4일 문을 연 조선민족예술관 1층에는 ‘안중근 특별전시실’이 설치됐다. 안 의사 흉상을 비롯해 사진과 문서 등 자료 300여 점이 이곳에 전시돼 있다. 한국인들이 하얼빈공원으로 기억하는 자오린(兆麟)공원에는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 등 안 의사가 쓴 붓글씨를 새긴 유묵비가 들어섰다.
숭모회 중국지부의 이성수 회장은 “중국 정부는 유묵비를 세우기 위해 푸젠(福建) 성에서 비석용 돌을 공수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고 말했다.
올해 초만 해도 거리에 세워진 안 의사의 동상이 불법이라며 철거를 명령했던 중국 정부가 왜 태도를 바꿨을까.
하지만 시 당국은 하얼빈 역의 저격현장에 안내판 설치를 불허하고 안 의사 전용기념관 설치에도 반대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눈치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란다.
“구한말 한국인이 대거 거주했고 중국과 러시아가 교대로 점령했던 이 일대를 정치적으로 회복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통해서라도 안 의사가 활동한 지역의 의미를 되살려 주세요.”
탐방대 황덕호(62) 단장은 대학생들에 대한 이런 당부로 아쉬움을 달랬다.
크라스키노·하얼빈=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이 회장은 “한국 기업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안 의사 유적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며 “한국 기업이 안 의사의 역사를 되살리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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