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 “내 아내만큼 사랑스러운 여자가 또 있을까! 제왕 옆에 누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있는 여자인데.”
이아고 “네. 어제까지는 그리하셨죠.”
오셀로 “재치 있고 귀여운 데다 그 목소리! 그녀가 노래 부르면 사자도 온순해질 거야”
이아고 “그러니 더 나쁘죠.”
오셀로 “그래. 하지만 마음은 또 얼마나 따뜻한데.
이아고 “어느 남자한테나 따뜻하죠.”
오셀로 “그래그래. 더 사무치게 억울하고 분하다, 이 배신감….”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도록 오셀로를 이아고가 부추기는 대목이다. 음산한 말투로 얄밉게 맞장구를 치며 데스데모나를 부정한 여자로 몰아가는 배우 박지일의 모습은 딱 간사한 ‘이아고’ 그 자체였다. 오셀로 역의 장우진은 가무잡잡한 외모부터 ‘검은 무어인’ 오셀로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는 “피부가 흰 편이어서 오셀로 역을 위해 일부러 2번 기계 태닝을 받았다”고 했다.
보통 ‘런 스루’(연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연극처럼 그대로 하는 것)는 공연 2주 전쯤 시작하지만 꼼꼼하기로 소문난 한태숙 연출은 공연 한 달 전부터 이미 ‘런 스루’를 시작했을 만큼 배우들은 ‘강훈련’ 중이었다.
박지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만만치 않은 연출가”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하지만 ‘최초의 관객’인 연출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관객을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를 재해석한 이번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연출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오셀로’도, ‘오셀로와 이아고’도 아닌 ‘이아고와 오셀로’. 이 작품의 무게중심은 ‘이아고’에 놓여 있다.
원작에서는 조연일 뿐인 이아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뭘까?
“솔직히 그냥 원작 그대로의 ‘오셀로’였다면 안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아고’는 요즘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현대적인 캐릭터예요. 부관에서 밀려난 이아고의 심리는 승진에서 누락한 직장인의 심리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고요. 이아고의 악한 심리를 해부해 보고 싶었어요. 사이프러스 섬에서 나흘 동안 발생한 한 편의 ‘범죄추리극’처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한태숙)
한태숙 연출가는 그동안 셰익스피어를 전복(‘레이디 맥베스’)시키거나 정면으로 진지하게 다뤄(‘꼽추, 리차드 3세’)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이아고와 오셀로’ 준비하면서 제 방에 천으로 된 커다란 셰익스피어 초상화를 하나 걸어 놨어요. 그리고 매일 말을 걸죠. ‘이번에 영감님 작품 제대로 만들어볼 테니 도와주세요’라고.”
9월 12∼17일. 화∼금 8시, 토 일 3시 7시. LG아트센터. 2만∼4만 원. 02-2005-011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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