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80’. 요즘 유행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팝과 록을 LP판으로 틀어준다. 실내 장식물도 턴테이블, 구형 스피커와 전축, LP판을 찍는 프레스 등 한물간 음악기기 일색이다.
‘홍익대 문화’의 주류인 젊은 층의 기호에 맞지 않다보니 클럽은 1년 넘게 적자를 내고 있다. 하지만 클럽 주인 김진호(40) 씨는 “문을 닫을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30, 40대만을 위한 공간이 홍익대 앞에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란다.
○ 80년대 잘나갔던 DJ의 놀이터
김 씨는 1985년부터 2001년까지 ‘미스터 리’ ‘스튜디오 80’ ‘히포드럼’ ‘줄리아나 서울’ 등의 나이트클럽에서 DJ로 활동했고, 2003년 4월부터 2004년 6월까진 음반회사인 록레코드코리아의 대표를 지냈다. “‘스튜디오 80’은 음악과 함께 80년대를 보낸 사람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꾸민 쉼터 내지 놀이터”라는 게 그의 설명.
김 씨가 록레코드코리아의 대표로 있던 때는 MP3 음악파일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나 음반업계가 무너지고 있던 시기. 그는 하루가 다르게 침체되는 음반시장에서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낼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낙천적인 성격인데도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어요. 몸과 마음이 지치는 건 물론이고 음악까지 싫어지더군요. 더 늦기 전에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표를 던진 직후 그는 ‘스튜디오 80’을 만들었다.
분신과도 같은 4만여 장의 LP판과 각종 구식 음악기기들을 전시해 놓고, 사회생활에 지친 또래 세대가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스튜디오 80’이란 이름은 80년대의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가 DJ로 활동했던 나이트클럽 중 가장 애착을 가졌던 강남역 부근의 ‘스튜디오 80’이 부활했다는 뜻도 있다.
○ 지킬 것은 지킨다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는 적자 행진 속에서도 지킬 것은 지킨다.
신분증 검사를 안 해 종종 30세 미만의 고객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때마다 그는 “죄송하지만 이곳은 30, 40대를 위한 공간이라 손님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악만 나오니 특별한 목적이나 관심이 없다면 다른 좋은 클럽에 가시라”며 정중히 손님을 내보낸다.
음악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도 거부 대상이다.
“80년대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로 이뤄진 인터넷 동호회에서 ‘스튜디오 80’의 존재를 알고 20여 명이 단체로 자주 왔어요. 클럽을 운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그들과 친해져서 저도 그 동호회의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카페 자료실에서 공짜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올려진 음악 파일들을 보고 눈이 뒤집혔죠.”
김 씨는 동호회 회원들에게 자신이 음반회사 대표로 일할 때의 경험과 동료 음악인들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정말 음악을 사랑한다면 자료실을 폐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으로 모실 수 없다는 경고와 함께.
그러나 그는 ‘앞뒤가 막힌 속 좁은 사람’ ‘쓸데없는 참견꾼’ 취급만 받았다. 한바탕 다툰 뒤 동호회 사람들은 ‘스튜디오 80’을 다시 찾지 않았다.
○ 진정한 30, 40대의 놀이터
그는 30, 40대가 80년대 음악에 대한 추억 못지않게 당시 유행했던 ‘막춤’과 ‘패션춤’에 대한 향수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스튜디오 80’을 찾는 손님 중 상당수가 막춤 음악인 ‘해피송’(보니엠) ‘두유 워나 펑크’(실베스터) ‘긴기라기니’(곤도 마사히코), 패션춤 음악인 ‘할렘 디자이어’(런던 보이스) ‘SOS 포 러브’(모던토킹)를 신청하고 일부는 좁은 공간에서도 춤을 추는 데서 얻은 확신이다.
“30, 40대의 전용 놀이터로 자리매김해 보자는 거죠. 당시 분위기를 제대로 내려면 역시 음악과 춤을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풀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춤이 제격이지요. 지금까지의 클럽 분위기가 음악 감상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춤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꾸밀 생각입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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