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혈우병-근이양증-색맹과 같은 유전병이 많다는데 왜?
여성보다 생존능력이 떨어진다는데 왜?
그것은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희한한 구조의 한 쌍이다.
Y염색체는 성별을 결정하는 한 가지 사명에 매달리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우리 삶을 조절한다.》
나의 전남편 ‘Y’에게.
안녕, 땅딸보. 저예요, ‘X’. 당신의 전 부인(ex-wife).
요즘도 그렇게 숨어서 은둔의 세월을 보내고 있나요. 당신은 내게 진저리를 치겠지만 우리가 3억 년 전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공포되기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기 위해 펜을 들었어요.
1890년 독일의 생물학자인 헤르만 헨킹이 나를 최초로 발견했을 때 내 이름을 X로 지어준 것이 내가 당신의 전 부인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서가 아니라는 것은 당신도 잘 알겠죠. 헨킹은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 다른 염색체들은 모두 둘로 분리되는 춤을 추는 동안, 묵묵히 한쪽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남아도는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의미에서 X라고 이름을 지었잖아요. 무도회장에서 남자들에게 춤 신청도 못 받는 여성을 뜻하는 ‘벽의 꽃(wall-flower)’이라는 모욕적 별명까지 내게 붙은 것을 알고 당신이 폭소를 터뜨렸다지요.
하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생겼다는 성경 말씀이나, 남근이 없는 여자 아이가 좌절감 때문에 남근을 선망하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남성 우월적 주장과 맞아떨어져 생긴 오해니까요.
거기에는 당신의 책임도 있잖아요. 1905년 미국의 생물학자 네티 스티븐스가 쌀벌레의 정자에 숨어 있던 당신을 발견한 뒤 당신의 몸에 새겨진 ‘SRY’(태아의 생식샘을 고환으로 전환시키는 유전자)라는 문신이 남녀의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밝혀지면서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X염색체, 활발하고 능동적인 Y염색체의 신화가 생겨났으니까요.
물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책임은, 세포마다 X가 두 개씩 있는 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X와 Y를 짝으로 지닌 남자에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남아선호 문화를 지닌 국가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던 여성들을 구제해 주기는 했지만.
남성들이 혈우병, 근이양증, 색맹과 같은 유전병에 취약하고 여성보다 생존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내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란 것도 이미 알려졌지요. 인간의 유전자 중 가장 덩치가 큰 디스트로핀이라는 슈퍼 유전자를 운반하는 것도 저라는 것이 밝혀졌고요.
반면 당신은 다른 염색체들보다 작고 못생겼을 뿐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도 떨어지는 ‘염색체계의 왕따’라는 점이 들통 났지요. 심지어 두더지 들쥐와 같은 동물들은 아예 당신을 자신의 세포에서 제거해 버렸다는 비참한 사실까지 밝혀졌어요. 그들에게 당신의 존재는 그만큼 부담스러웠던 거지요.
사람들은 당신의 능력은 성별을 결정짓는 한 가지밖에 없지만 나의 능력은 생존을 결정짓는 수천 가지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문제는 우리의 이런 역할 분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우리가 실은 오래전에 이혼한 사이라는 비밀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다른 염색체들처럼 평범한 커플로 시작한 우리가 오래전 파경에 이르렀음이 밝혀진 거죠. 우리는 다른 염색체 커플과 달리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소통도 어려운 남남이 됐잖아요.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에 큰 상처 입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옛정을 생각해 기원합니다.
지금도 세속적 평가보다는 진실한 사랑을 믿는 당신의 전 부인 ‘X’로부터.
원제 ‘The X in Sex’(2003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