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입력 2006년 8월 19일 03시 00분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송은주 옮김/492쪽·1만1000원·민음사

우리에게는 조숙하고 위악적이어서 매력적인 어린 화자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새의 선물’의 진희, ‘양철북’의 오스카,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 ‘자기 앞의 생’의 모모, 그리고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등장하는 크라우스 형제까지. 열 살을 채 넘지 않은 이 아이들은 그 어떤 어른들보다 성숙하게 삶의 모순을 바라보고 기록한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홉 살 소년 오스카는 혼란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서 그 어느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지금-여기’의 삶을 말한다.

이 책은 9·11테러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 개인과 가족 그리고 그들에게 할애된 미래를 한꺼번에 앗아간 역사적 사건은 폭력에 의해 좌초될 수밖에 없는 인생의 근원적 아이러니를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 명의 화자의 육성이다.

9·11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할아버지, 죽은 언니를 잊지 못한 채 유령처럼 떠도는 남편을 지켜봐야만 했던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오스카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 구체적인 방식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소설 사이사이에 직접 찍은 사진이나 노트를 삽입한다. 마치 ‘거기 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나 영상처럼, 작가는 기록된 모든 사유들을 그 자체로 보여 주고자 한다.

이 책에서 일차적으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삶의 비의(秘意)를 알아 버린 듯한 조숙한 아이의 위악이지만 결국 밑줄을 긋게 하는 부분들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상실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다. 작가는 상실이란 인생의 비의가 아니라 본질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횡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상상력임을 제안한다.

자꾸만 사라져 가는 언어의 질감, 밑줄을 긋던 손길마저 잠시 멈추게끔 하는 사유의 힘이 이 책을 관류하고 있다.

작가의 부인 니콜 크라우스도 작가다. 크라우스의 작품 ‘사랑의 역사’도 이번에 함께 출간된다. 두 사람 모두 뉴욕 문단의 ‘분더킨트(신동)’로 통하며 독자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국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강유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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