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대목.
갈림길에 서 있던 앨리스는 체셔 고양이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고양이는 대답했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지에 달렸지.” “나는 어디든 상관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고양이는 말을 끊었다.
좋은 협상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풍부한 정보, 포커페이스,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자세 등 그동안 나온 협상 전략서들이 추천한 여러 가지를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하나 더 추가했다.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 것.’ 저자는 유능한 협상가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거기로 가야 하는지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야 올바른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니의 성공 스토리가 좋은 예다.
1955년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사장이 독자 개발한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팔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으나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때 미국의 가장 유명한 전자제품 회사였던 불로바가 제안을 했다. 10만 대의 라디오를 주문할 테니 불로바의 상표를 부착해서 미국에서 판매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소니의 총자산규모보다 많은 액수의 계약 조건이었다.
그러나 모리타 사장은 곧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제안은 금전적으로는 매력적이었으나 소니를 독립적이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자신의 목표와 상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소니는 다른 회사와의 계약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로 미국 진출에 성공했고 곧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자회사가 됐다.
협상의 타결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조언한다. 협상은 어디까지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을 잊고 협상 자체에 매몰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의 아서 체임벌린 총리가 주도해 독일과 맺은 평화협정은 협상 타결에 집착해 본래의 목적을 잃었던 대표적인 경우다. 협정을 끌어내는 데 몰두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군사력 억제라는 본래의 목표를 잃고 말았고 이는 두 번째 세계대전의 원인이 됐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 정부의 대북 협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애초에 우리가 북한과 협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반도 평화 정착을 목적으로 많은 물자를 제공하지만 한반도의 핵 위기는 더 심화되어 간다. 우리도 북쪽과의 협상 타결에 치우쳐 협상 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인 리처드 셀은 전직 변호사로 지금은 미국 와튼스쿨에서 협상과 비즈니스법 전략을 가르치는 협상 전문가다. 원제 ‘Bargaining for Advantage’(1999).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