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말풍선 거울’…덜렁대고 실수하면서 자라는거죠

  • 입력 2006년 8월 19일 03시 00분


◇말풍선 거울/박효미 글·최정인 그림/124쪽·7500원·사계절(초등 저학년)

그림책을 주자니 심드렁해하고 글자가 빽빽한 책을 주면 벅차하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읽으면 좋을 책. 아직 어린 초등 1학년생보다는 선생님 말귀를 알아듣고 뭔가 잘해 보고 싶어 하는 2, 3학년생한테 맞다.

한결이 선생님은 매사에 똑바른 걸 좋아하고 아이들이 각자 맡은 일만 잘해내면 반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활 태도에 따라 당번을 시킨다.

한결이는 수업시간 전 시간표에 따라 선생님의 교과서를 펴는 당번이다. 쉽기도 하지만 폼이 나는 일이다.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3주 만에 걸레 빨기 당번에서 교과서 펴기 당번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덜렁이에다 무엇이든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던 한결이가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된 것은 지난해 담임선생님한테 핀잔을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이혼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담임선생님은 무심코 ‘집안이 그러니 알아서 잘해라’고 했고 그 말에 상처를 받은 한결이는 생활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그때부터 한결이는 준비물을 꼭꼭 챙겼고 책가방에 모든 구획을 정해 둬 정리하는 버릇을 들인다.

그러나 준비물로 손거울을 챙겨 가야 하는 날 엄마가 일찍 집을 나서는 바람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다. 선생님의 교과서 펴 놓는 것을 잊어먹더니 준비물을 챙겨 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을 서게 된다. 급기야 교과서 당번에서도 밀려나 창문 여는 당번을 맡는다.

그러면 어때? 한결이는 다른 아이들과 반성문을 쓰면서 생각한다. 날마다 잘할 수만 없다. 잘할 때도 있고, 또 못할 때도 있고, 또 안 될 때도 있다….

한결이는 굳은 결심으로 한때 모범생이 됐지만 손거울 소동 끝에 한 뼘은 더 크게 된다. 그리고 좀 못 해도 괜찮다는, 제법 어른스러운 깨달음도 얻게 된다.

덜렁이에다 게으르고 실수투성이지만 그래도 잘해 보려하는 많은 아이에게 작가는 박수를 보낸다.

제목이 된 ‘말풍선 거울’은 한결이가 외할아버지 방에서 발견한 낡은 손거울이다. 이 손거울이 만들어내는 빛 그림자는 만화책에 나오는 말풍선처럼 글자를 만들어낸다. 선생님 머리 위에 올리니 바로 선생님의 속마음이 글자로 나타난다. 평소에는 말로 못했던 이야기, 말하기는 뭣하지만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까지 담아내는 신기하고 재미난 거울은 아이들을 열광시킨다.

준비물을 가져왔으면서도 다른 아이들 것과 다르기 때문에 창피해서 꺼내 놓지 못하고 차라리 벌을 선 적이 있는가. 다른 아이들이 공부하는 사이 교실 뒤에서 벌 서며 심장이 콩콩거렸던, 신선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작가는 아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려내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얘기 속에 쏙 빠져들게 만든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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