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973년 경주 고분서 천마도 발굴

  • 입력 2006년 8월 23일 03시 00분


‘하늘을 날아라/임금알을 품었던/가슴으로 날아라/태양의 불갈기/치켜세운 꼬리의/불꽃으로 날아라/희열 충만/눈 활짝 열어 뜨고/내뿜는 불숨,/하늘 뜻 푸르른/세상을 날아라/백화 숲을 넘어/인동 당초의 꽃밭/피안까지 날아라.’(백우선의 시 ‘천마-천마총 천마도’)

1973년 8월 23일 경주 155호 고분에서 ‘천마도(天馬圖)’가 발굴됐다. 고구려 벽화는 많이 남아 있지만 고대 신라의 회화작품으로는 처음 나온 기념비적인 유물이었다. 천마도는 왕의 머리맡에 놓인 부장품 보물상자 속에서 발견됐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천마도는 죽은 왕이 천마를 타고 하늘나라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넣어 놓은 것이었다. 고고학자 조유전 씨는 천마도에 대해 “매우 사실적이어서 마치 하늘을 나는 천마가 환생해 후다닥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천마총’의 발굴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1971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은 포항제철의 고로화입식(高爐火入式) 참석차 포항을 방문했다가 가족들과 함께 경주를 찾았다. 평소 신라 천년 고도 경주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인 박 대통령은 경제수석비서관에게 경주관광개발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계획안에 신라 최대의 무덤인 98호분(황남대총)을 발굴 조사하고 내부를 공개해 관광자원으로 만든다는 방침이 들어 있었다.

황남대총은 높이 25m, 하부 길이가 120여 m나 되는 쌍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신라 무덤을 발굴한 경험이 없었기에 외형이 많이 파괴된 155호분을 시험적으로 발굴해 경험을 축적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험 발굴에서 뜻밖의 대박이 터졌다. 찬란한 금관을 비롯해 허리띠, 목걸이 등 출토된 유물이 1만여 점이나 되어서 경주박물관에 별관을 하나 짓고 발굴 유물을 수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어 가장 대표적인 발굴품의 이름을 따서 ‘천마총’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런데 이 이름을 놓고 경주 김씨들이 들고일어났다. ‘김씨 성을 가진 임금의 무덤이 분명한데 하필이면 말 무덤 이름이냐’는 항변이었다. 최근에는 천마 그림이 말이 아닌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그린 ‘기린도’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하튼 북방 유목민의 상징과도 같은 말이 신라의 고분 부장품으로 발견된 내력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천마의 몸에 그려진 반달 모양의 무늬는 남부 러시아에 토대를 두었던 고대 스키타이 미술에서 보석으로 장식했던 문양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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