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 기자정신 70년 지나도 생생”

  • 입력 2006년 8월 23일 03시 10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주역인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의 아들 이태영 씨가 아버지의 유품인 동아일보 스크랩북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씨는 부친이 모아 둔 신문 스크랩북을 22일 동아일보사에 기증했다. 신원건  기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주역인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의 아들 이태영 씨가 아버지의 유품인 동아일보 스크랩북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씨는 부친이 모아 둔 신문 스크랩북을 22일 동아일보사에 기증했다. 신원건 기자
“선친의 손때 묻은 유일한 유품인 만큼 제가 보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 70주년을 맞아 이 자료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에 기증하고 싶습니다.”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 당시 ‘일장기 말소의거’의 주역이었던 이길용(1899∼?) 전 동아일보 기자의 아들인 이태영(65) 스포츠포럼21 대표가 22일 부친이 남긴 유품을 동아일보사에 기증했다.

이번에 기증된 유품은 1932년과 1936년 동아일보에 실린 스포츠 관련 기사를 이 기자가 모아놓은 두 권의 스크랩북. 70년이 넘어 만지기만 해도 부스러질 듯한 스크랩북에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특집으로 실렸던 스포츠 기사가 꼼꼼히 스크랩돼 있고, 이 기자가 직접 쓴 날짜와 메모도 담겨 있다.

이 씨는 “아버님은 10여 권의 스크랩북과 세 상자 분량의 사진 자료를 남기셨는데, 1956년 대한체육회 등이 ‘체육대관’을 발행할 때 자료로 사용한 뒤 많이 유실됐다”며 “되찾은 자료 중 가장 중요한 스크랩북 2권을 기증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님은 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중 3·1만세운동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가 옥중에서 송진우 당시 동아일보 사장을 만나 언론계에 투신하셨다”며 “아버님은 수해지역에 현장 취재를 가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며 쓴 ‘서울부감기’를 연재하는 등 정열적이고 적극적인 기자 활동을 하셨다”고 소개했다.

이 씨는 1936년 8월 ‘일장기 말소의거’ 전후의 베를린 올림픽 기사들을 보면서 “아버지는 회고록에서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지면에서 일장기 말소는 항다반사(恒茶飯事)로 부지기수였다’고 밝히셨듯이 투철한 독립의식을 갖고 계셨다”며 “또한 스크랩북의 스포츠 기사를 보면 질과 양에 있어서 요즘 스포츠저널리스트의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일장기 말소의거로 일제에 의해 강제 퇴직된 뒤, 1945년 복직됐으나 6·25전쟁 중 납북됐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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