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지정권한은 상품권 발행사업자를 정하고 발행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권리로 상품권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절대 권력’과 같다. 지정권한의 주체가 무리하게 바뀐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 가리고 ‘아웅’(?)=문화부가 상품권 인증제를 폐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해 6월 인증을 해준 22개 상품권 발행업체가 가맹점 등에 대한 허위 서류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부는 곧바로 상품권 발행업체들의 인증을 모두 취소하고 지정제도를 도입하면서 지정권한을 게임산업개발원에 위탁했다. 그 이전까지 게임산업개발원은 문화부가 업체 인증을 하기 전에 거치는 ‘사전 심사’만 했다.
모든 상품권 발행업체의 인증이 취소되는 문제가 불거지자 문화부가 산하 단체에 권한을 넘기며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모양새를 갖춘 것. 하지만 사실은 문화부가 게임산업개발원을 앞세워 오히려 권한을 악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나라당 ‘권력형 도박게이트 진상조사특위’ 소속 박찬숙 의원은 22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게임산업개발원 방문조사에서 우종식 원장에게 “정보기술(IT) 분야 노사모인 ‘현정포럼’(노무현을 지지하는 정보통신인 모임) 회원인 점이 원장 승진이나 발행업체 선정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문화부가 정부의 권한과 관련된 법률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부조직법 6조 3항은 ‘국민의 권리 의무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사무를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법인이나 단체 등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 의무와 관련된 업무는 정부 이외의 기관에 위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화부는 ‘정부의 모든 사무는 국민의 권리 의무와 관계되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 의무와 관련된 사무도 위탁할 수 있다’는 논리로 위탁을 강행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하면서 지난 1년 동안 19개 업체가 찍어낸 30조 원 상당의 상품권은 모두 법적 근거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지정제도 도입 후 불거진 문제들=상품권 지정제도 도입 이후 사행성 성인게임기 ‘바다이야기’ 등을 개·변조한 불법 게임이 성행하고 상품권 발행이 폭증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2002년 경품용 상품권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04년 말까지 발행된 상품권 규모는 4000억 원 수준이었지만 지정제도가 도입된 뒤 지난달까지 발행된 상품권 규모는 30조 원을 넘는다.
게임산업개발원은 법적 근거가 없는 기금 명목으로 상품권 발행업체로부터 146억 원이 넘는 돈을 거뒀다.
상품권 발행 인증이 취소됐던 22개 업체 가운데 11개 업체가 지정제도 실시 이후 선정된 19개 지정업체에 다시 포함되면서 지정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다.
인증제와 지정제도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인증 취소 업체가 다시 지정 신청을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문화부의 논리가 궁색하게 된 것. 결과적으로 보면 인증제나 지정제도나 부실 업체를 효과적으로 가려내지 못한 셈이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정부가 지분30% 가진 업체 올 3월 상품권 발행社 지정▼
정부가 지분 약 30%를 갖고 있는 업체가 3월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또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 이 업체의 본사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D사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3·1절 골프’를 함께 쳤던 부산지역 기업인들이 주요 주주로 있는 ㈜삼미와 함께 3월 15일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됐다. 이때 지정된 곳은 두 업체 뿐이다.
D사는 이후 7월 말까지 4825억 원어치의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해 전체 19개 발행업체 가운데 발행액 순위 13위에 올라 있다.
재정경제부는 현재 D사의 지분 29.58%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 52.93%로 최대주주인 D사 대표 L 씨에 이어 2대 주주다.
재경부가 D사의 대주주가 된 것은 L 씨가 상속세를 주식으로 대납했기 때문. L 씨는 2004년 9월 17일 부친에게 상속을 받는 과정에서 부족한 세금 일부를 주식으로 냈다.
김 의원은 “사실상 정부가 사행성 성인게임 사업을 하고, 이익 중 일부를 가져가는 셈”이라며 “D사가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될 때 정부 부처가 대주주라는 점이 고려된 게 아니냐”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재경부가 D사의 대주주가 된 5일 후인 2004년 9월 22일 임대차 계약을 하고 서울 종로구 당주동에 있는 D사의 본사 건물 2층 146평을 쓰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임대차 계약을 한 차례 연장해 올해 8월 31일까지 이 건물을 사용하게 된다.
D사 명의 통장과 국무조정실 세출 자료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D사에 월세와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1172만3800원을 내고 있다.
김 의원은 “D사와 ㈜삼미가 하루 차이로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을 신청해 이 전 총리와 골프 라운드를 한 다음 날인 3월 2일 실사를 받고 같은 달 15일 발행업체로 지정이 됐다”면서 “모종의 영향력이 작용한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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