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었다면 ‘정치 공작’이라는 말이 연상됐을 법도 하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졌고 어느 쪽도 만남에 거리낌이 없었다.
4일 낮 김승규(사진) 국가정보원장이 우리 사회의 신(新)보수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을 초청해 2시간 동안 오찬을 함께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보수 인사들을 국정원장이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는 참여정부 들어 처음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게 초청자 측의 변(辯). 참석 대상은 서경석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이석연 시민과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서울대 박효종, 한양대 나성린, 중앙대 제성호, 인천대 조전혁 교수 등 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뉴라이트 진영의 핵심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한 참석자가 노무현 대통령을 “과시욕이 강하다”며 직설적으로 비판하면서 분위기가 다소 썰렁해졌다는 후문. 그러나 이 인사는 “이 정부에서는 정보기관에서 대통령을 비판해도 안 잡아간다”고 농담을 던져 모두 한바탕 웃은 뒤 토론에 들어갔다.
당초 한미 FTA가 의제가 될 예정이었으나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인사들과 자리를 함께한 때문인지 모든 주제가 도마에 올랐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북한 미사일 발사, 불법 이민 문제, 성매매 근절 대책의 허실 등….
김 원장은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 등으로 한미동맹에 문제가 있다고들 하는데 한미 정보기관 간에는 긴밀한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며 “정보기관은 중심을 잡고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 원장은 “우리나라가 10년간 선진국 진입에 턱걸이를 하고 있는데 내년 대선에서 후보들이 선진국 진입을 위한 비전이나 공약을 마련하는 데 필요하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기초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또 그는 한미 FTA에 대해 “봉급도 안 받으시는 분들이 한미 FTA를 위해 노력해 줘 감사하다”고 참석자들에게 사의를 표한 뒤 “한미 FTA는 반드시 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참석자는 “터놓고 얘기해 보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꽤 있었다”며 “가끔 이런 자리를 마련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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