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02>行法俟命

  • 입력 2006년 9월 8일 03시 00분


전통적으로 우리는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해 왔다. 이런 생각이 굳어지면 좋은 일을 할 때마다 복 받을 일을 먼저 기대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나쁜 것이 아니다. 좋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복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훌륭한 사고방식이고 멋진 생활 자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좋은 일을 했는데도 복이 오지 않는 일이 참으로 많다. 우리는 이런 경우 하늘도 무심하다고 말한다. 과연 하늘은 무심한가?

‘行法俟命(행법사명)’이라는 말이 있다. ‘行’은 ‘행하다, 행동하다’라는 뜻이다. ‘行動(행동)’은 ‘행하여 움직이다’라는 말이고, ‘行事(행사)’는 ‘일을 행하는 것’을 뜻한다. ‘法’은 헌법, 민법과 같이 ‘법’을 뜻하지만 원래는 ‘도리, 모범, 법도’와 같은 뜻을 나타낸다. 이런 의미 때문에 ‘法’은 불교와 관련된 것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野壇法席(야단법석)’은 원래 ‘들에 설치해 놓은 불법(佛法)을 설명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野’는 ‘야외’라는 뜻이고, ‘壇’은 ‘단을 설치하다’라는 말이다. ‘法席’은 ‘불법을 설명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훌륭한 스님이 설법을 하면 사람이 많이 모여 소란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은 이 말이 ‘사람이 많이 모여 소란한 것’을 나타내게 되었다. ‘俟’는 ‘기다리다’, ‘命’은 ‘하늘의 명, 천명’을 뜻한다. 이를 정리하면 ‘行法俟命’은 ‘법도를 행하고 천명을 기다린다’, 즉 ‘법도를 실천하는 것은 천명을 기다리기 위함이다’라는 말이 된다.

옛날의 현자들은 언행을 성실하게 하는 것도, 덕을 베푸는 것도, 의리를 지키는 것도, 진리를 밝히는 것도 모두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관계없이 천명을 기다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명이 다다르면 행복하고, 천명이 다다르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하늘은 이를 모두 기억한다는 것이다. 불교, 유교, 기독교의 교리가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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