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산에서 길을 묻다

  • 입력 2006년 9월 8일 03시 00분


인생은 끝없는 산행길.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바위길만 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평탄한 오솔길만 걷는다. 그러나 시작도 끝도 없는 고행길인 것은 마찬가지. 종주산행을 마치고나면 인생의 맛이 그윽해진다. 석양에 물든 북한산의 봉우리들. 난 저 등성이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어치 슬픔과 울분으로 붉으락 푸르락 하는 넌 누구냐. 인류 출현 이래 살아서 지구를 탈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진 제공 산악사진가 안승일 씨
인생은 끝없는 산행길.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바위길만 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평탄한 오솔길만 걷는다. 그러나 시작도 끝도 없는 고행길인 것은 마찬가지. 종주산행을 마치고나면 인생의 맛이 그윽해진다. 석양에 물든 북한산의 봉우리들. 난 저 등성이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어치 슬픔과 울분으로 붉으락 푸르락 하는 넌 누구냐. 인류 출현 이래 살아서 지구를 탈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진 제공 산악사진가 안승일 씨
《‘걸으면 장수만세, 누우면 병치레.’ 대한민국은 요즘 운동하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곳곳에서 걷고, 달리고, 구르며 저마다 땀을 흘린다. ‘보는 스포츠’에서 ‘즐기는 스포츠’로 바뀌고 있는 것. ‘숨쉬기 운동’만 하는 사람은 간첩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운동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가을.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 스포츠를 즐기고 있을까. 그 현장을 찾아간다.》

‘히말라야 산악인’ 박영석은 ‘낮은 땅’ 서울에만 오면 ‘피가 끈적끈적’하다. 답답하다. 그럴 땐 한밤 인수봉에 오른다. 그리곤 바위에 앉아 몇 시간이고 묵묵히 서울 시내를 내려다본다. 살 것 같다. 속이 시원하고 피가 맑아진다.

‘히말라야 탱크’ 엄홍길은 어릴 적부터 아예 도봉산 품안에서 자랐다. 그는 1998년 안나푸르나를 오르다가 오른쪽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병원에선 ‘등산 불가’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도봉산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려 미칠 것 같았다. 그는 깁스를 풀자마자 혼자서 북한산 정상에 올랐다. “휴, 이렇게 좋은 것을!”

서울은 복 받은 도시다. 조금만 벗어나도 산이 있다. 한강 위쪽 강북에는 소위 ‘불수사도북’, 즉 불암산(507.7m)-수락산(637.7m)-사패산(552m)-도봉산(740m)-북한산(836.5m)이 둘러싸고 있다. 강남엔 ‘삼관우청광’으로 불리는 삼성산(478m)-관악산(632m)-우면산(293m)-청계산(618m)-광교산(582m)이 아우르고 있다. 강북 산들은 기운이 강하다. 바위산이 많고 상대적으로 강남 산보다 험하다. 이에 반해 강남 산은 흙산이 많다. 경사가 완만해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7일은 음력 윤7월 보름날. 이번 주말연휴가 달을 벗 삼아 야간 종주산행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일반인들은 20시간 안팎 걸리는 게 보통.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 무박으로 일요일 오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최근엔 13시간 이내 주파하는 산악마라톤 대회도 생겼다. 우승자 기록은 8시간 10분대. 불암산∼수락산∼사패산을 첫 번째 주에, 도봉산∼북한산 코스는 그 다음 주에 주파하는 ‘2주일 종주파’도 있다. 수락산 바위 암벽 정상과 하산길 기차바위(홈통바위)는 시작에 불과하다. 도봉산은 온통 기암괴석으로 쇠말뚝과 쇠줄에 의지해야 겨우 지날 수 있는 곳이 수두룩. 아찔한 천 길 낭떠러지도 곳곳에 숨어 있다. 암벽은 가능한 한 우회하는 게 좋다. 바위 앞에선 겸손이 최고 미덕. 북한산도 도봉산 못지않게 바위길이 많다.

○ 삼성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광교산

능선 길이만 따진다면 불수사도북보다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관악산 일부코스를 제외하곤 그다지 험난한 지역이 없다. 오르락내리락 오솔길을 가듯 아기자기하고 재밌다. 여성이나 연장자, 초보자들에게도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다. 보통 주말 산행자들은 20시간 안팎에 걸쳐 종주를 마친다. 시간은 불수사도북과 비슷하다. 전문 산꾼은 7시간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로 밤에 지나게 되는 관악산 코스는 조심해야 한다. 밤 산행은 낮 산행과 여러 가지로 다르다. 가끔 밤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한치 앞이 안보이기도 한다. 코스가 쉽다고 음주산행 하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띈다.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 종주는 자유와 해방이다

산은 왜 오르는가. 그건 내려오기 위해서 오른다. 오를 때의 ‘선(線)’과 내려올 때의 ‘선’ 그리고 그 밑변을 이으면 삼각형이 된다. 삼각형이 돼야 비로소 등산은 완료된다. 불수사도북이나 삼관우청광은 각각 5개의 삼각형을 ‘발로 그리는’ 행위다. 삼각형은 자유다. 산은 해방구다. 가을 산은 바람 불어 더욱 선선하다. 야간산행은 묵언 정진이다. 풀벌레들은 자연의 목탁소리. 정상 정복에만 신경 쓰다 보면 주위 황홀한 가을 산 속살을 놓치기 쉽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고은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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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가을산행, 이것만은 명심

.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누구한테 연락할 것인지 미리 정해 놓을 것. 그리고 그 연락상대에게 산행 일정이 표시된 지도를 미리 복사해 주고 산행에 나서는 게 좋다.

2. 종주 인원은 최소 3명이 넘어야 한다. 한두 명이 무턱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하면 대책이 없다.

3. 리더는 ‘생명 줄’이다. 대장의 결정이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4. 가을 산은 일교차가 심하다. 두꺼운 옷을 하나 입는 것보다, 얇은 옷을 여러 개 겹쳐 입는 게 체온유지에 효과적이다.

5. 종주 시작 전 24시간 동안은 평상시보다 2∼3L 물을 더 마셔두는 게 좋다.

6. 등산에는 하루 6000칼로리의 에너지(보통 3배)가 소비된다. 음식은 산행 도중 조금씩 자주 먹는 게 좋다. 낮에는 주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밤에는 지방과 단백질로 칼로리를 비축하라.

7. 산행 도중 쉴 때는 앉지 말고 서서 쉬어야 한다. 한 발은 높은 위치에 두고, 나머지 한 발은 낮은 곳에 둔 채 스트레칭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면 더 좋다. 땀이 식지 않을 정도로만 쉰다.

8. 산행이 끝난 뒤 곧바로 술집이나 음식점으로 향하지 마라. 스트레칭으로 충분히 근육을 풀어줘야 근육통이 오지 않는다. 두 사람이 등을 맞대어 서로 근육을 풀어주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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