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를 스승 삼고 천년신라 벗 삼으니 붓이 손을 이끄네

  • 입력 2006년 9월 11일 03시 05분


6년 만의 개인전 ‘천년 신라의 꿈’을 여는 한국화가 박대성 씨. 뒷그림이 ‘천년 신라의 꿈-원융의 세계’로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탐색한다. 안철민 기자
6년 만의 개인전 ‘천년 신라의 꿈’을 여는 한국화가 박대성 씨. 뒷그림이 ‘천년 신라의 꿈-원융의 세계’로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탐색한다. 안철민 기자
한국화가 박대성(61) 씨. 이왈종 황창배 오용길 씨와 함께 한국화를 이끌면서 그 원류를 찾아가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10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에서 ‘천년 신라의 꿈’을 타이틀로 개인전을 연다. 10여 년 전부터 경북 경주의 남산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려와 ‘경주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개인전은 6년 만이다. 그는 “그동안 거대한 벽에 부닥친 것처럼 고통스러웠다”며 “추사를 파고들면서 내 길을 찾아봤는데 터널 끝의 빛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6년의 공백기 중 5년여 동안 헤매다가 불과 5, 6개월 전에 머릿속에서 섬광을 느꼈다. 이윽고 붓을 잡자 붓이 손을 움직였다.

전시작들은 실경 작품을 보인 2000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그는 “내 흉중에서 응고된 주관을 풍경에 넣었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과 같은 ‘천년 신라의 꿈-원융의 세계’는 500호 화폭에 경주 유적을 그려 넣었다. 황룡사 9층 석탑, 석굴암, 벽화에서 나온 듯한 사슴 등이 판타지를 자아낸다. 그는 “신라 천년의 꿈이 내 꿈 속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비슷한 크기의 ‘현율(玄律)’은 전통 한국화의 구도를 벗어나며 한국의 산수와 어우러진 먹의 힘을 보여 준다. 공간은 크게 왜곡되어 있고 긴장감이 넘친다. 풍경을 그렸는데, 한 미국인 컬렉터는 “어떻게 마천루를 이렇게 그렸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림 앞에 서면 먹의 생동 기운과 힘차게 뻗어 내려가는 붓의 움직임이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듯하다. 작가는 “수십 년 수련을 통해 법을 터득하면 필(筆)을 통제할 수 있다”며 “필법은 고송일지도(孤松一枝圖), 화법은 장강만리(長江萬里)”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견딘 나무가 하나의 가지로 그 위엄을 드러내는 듯하는 게 필법이고 만리길 강처럼 다양한 게 화법이라는 뜻이다.

12m에 이르는 대작 ‘법열(法悅)’은 석굴암 본존불과 십대제자상을 그린 작품으로 먹을 머금은 바탕 위에 돌과 흙으로 색을 입혔다. 투박하지만 강한 선과 은은한 먹의 변화가 작가의 필력을 보여 준다.

박 씨는 전통의 현대적 변용을 보여 주는 작가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는 “그의 현대성은 옛 동양의 미학적 원리로부터 나왔다. 보면 볼수록 현대적이니, 온고지신의 표본이요 법고창신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고 평했다.

작가는 특히 한국화에 현대미술에서 각광받는 미니멀리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응축된 표현과 먹의 단순 집약, 여백 등이 바로 한국화의 ‘오리지널’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다. 이를 모르고 미니멀리즘을 바다 건너에서 찾으려고 하는 이들을 그는 이해하기 어렵다.

작가는 다섯 살 때 왼팔을 잃었다. 대학을 못 다니고 독학으로 한국화 외길을 걸었다. 그는 “(대학을 못 다닌 게) 한때 콤플렉스였는데, 이제는 자유로운 작품 세계를 펼치는 토대가 됐다”며 “한국화의 현대적 필법을 배우고 싶은 후학들은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말했다.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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