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이야기]<104>言不顧行, 行不顧言

  • 입력 2006년 9월 13일 03시 01분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은 현대에 와서는 의미를 많이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으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 말을 하지 않으면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 말을 아껴서는 안 된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혼란을 불러 올 수 있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책임을 질 수 없는 말은 아껴야 한다. 이것이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言不顧行(언불고행), 行不顧言(행불고언)’이라는 말이 있다. ‘言’은 ‘말’이라는 뜻이다. ‘格言(격언)’은 ‘바로잡아 주는 말’이라는 뜻이고, ‘苦言(고언)’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쓴 말’이라는 뜻이다. ‘格’은 ‘바로잡다’라는 뜻이고, ‘苦’는 ‘쓰다’라는 뜻이다. ‘顧’는 ‘뒤돌아 보다’라는 뜻이다. ‘顧客(고객)’은 ‘항상 돌아보아 주는 손님’, 즉 ‘단골손님’이라는 뜻이다. ‘行’은 ‘실행, 행동’이라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합치면 ‘言不顧行’은 ‘말을 하고,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다’, 즉 ‘자기가 한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말이며, ‘行不顧言’은 ‘행동을 하면서 자기가 한 말을 돌아보지 않는다’, 즉 ‘행동을 자기가 했던 말대로 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결국, 말을 할 때는 행동으로 옮길 때의 문제를 미리 생각하고, 행동할 때는 자기 말대로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라는 의미가 된다. ‘多言數窮(다언수궁)’이라는 말도 이런 내용을 나타낸다. ‘말을 많이 하면 수가 막힌다’라는 말이다. ‘數’는 ‘바둑이나 장기의 수’, 즉 ‘방법, 방도’라는 뜻이고, ‘窮’은 ‘사라지다’라는 뜻이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스스로 행동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뜻이니 말은 아껴서 하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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