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국경탈출 그게 삶 아니던가…강영숙 씨 첫 장편 ‘리나’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소설가 강영숙(40·사진) 씨가 우연히 새터민(탈북자)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을 때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국경’이었다. 모든 것이 교환되고 집결되는 장소. 물건이며 돈이며 사람까지도. 그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인생 자체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강 씨의 첫 장편소설 ‘리나’(랜덤하우스)는 그 국경에 대한 이야기다. 열여섯 살 소녀 리나가 스물네 살이 되도록 대륙 곳곳의 국경을 떠돌아다니면서 겪는 파란만장한 경험이 담겼다.

그가 앞서 펴낸 단편소설집 ‘흔들리다’와 ‘날마다 축제’에서 현대인의 일그러진 초상을 낯선 방식으로 보여 준 작가로 평가받았다. 만화적인 상상력을 펼치면서도 문학적인 세계를 만들어 내는 강 씨의 장기는 장편에서도 잘 발휘된다. 소설의 탈출기는 처절한 게 아니라 냉정하게 때로 코믹하게 펼쳐진다.

“배터지게 먹을 생각에, 청바지와 구두를 걸칠 것이라는 희망에”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P국으로 가기로 한 리나.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을 때만 해도 순진한 소녀였던 리나는 온갖 사건을 겪으면서 영악해진다. 살인, 인신매매, 마약, 매춘, 강간 등 리나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일은 그를 능란한 사기꾼으로 만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작가는 말한다. 소설에서 리나는 P국으로 오고 싶어 하지만 늘 일이 꼬인다. “그런 게 삶이 아닌가, 마음먹은 바와 달리 일이 흘러가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리나의 방랑 서사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은유다.

그러나 비관으로 일관하진 않는다. 벙어리 소년 삐, 봉제공장 언니, 여가수 할머니와 ‘유사 가족’을 만들어 지내면서 리나는 지난한 삶을 위로받는다. 이 사람들이 폭발사고로 폐허가 된 공간에 정주하려는 모습을 소설 말미에 보여 주면서 강 씨는 인생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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