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올라탄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터프한 카우보이 '말보로맨'. 50여 년 간 미국 광고계를 주름 잡으며 단 한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흡연자는 멋지다."
현재 전 세계 흡연인구는 약 13억 명. 사람의 입과 코로 소비되는 기호품 중 이렇게 많이 사랑받은 품목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담배는 가난의 상징, 각종 질병 사망의 원인으로 취급당한다. 2006년 미국 시카고 고속도로에는 원숭이가 담배를 문 채 이렇게 말하는 광고판이 서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 구취, 가래 덩어리, 암… 담배 피는 게 부끄러워."
속 쓰린 애연가들은 이 책을 보며 마음을 달래보자. 이 책은 흡연이 시대, 환경, 인종, 문학, 예술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문화사적으로 다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들이 의학용 또는 의례용으로 사용하던 담배 잎사귀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전 세계로 전파된 경로를 추적한다. 또 각 나라 별 담배의 사회적 함의 등 흡연의 세계 정복사와 쇠락 과정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애연가라면 16세기 영국에서는 흡연이 '치료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이 반가울 듯. 1586년 영국 과학자 토머스 해리엇은 담배를 "위장과 머리의 사기(邪氣)나 더러운 체액을 정화하고 신체를 보호하는 거룩한 연기"라고 말했다.
미술사, 인류학, 음악, 영화 등 각 분야 전문가인 저자 33인은 예술 속 흡연의 메타포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셜록 홈즈의 파이프는 그의 추리력에 진중함과 권위를 부여하며, 팝아트는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가 담배에 불을 '당기는' 모습으로 젊음과 반항을 시각화했다. 은막의 흡연자 중 가장 성공한 배우로 꼽히는 마를레네 디트리히(1901~1992)는 각선미와 함께 담배를 페르소나로 활용해 전 세계 남성관객들에게 관음증적 흥분을 줬다.
반가운 것은 영문판 원서에서 빠진 한국 흡연 이야기도 들어있다는 점. 담배를 다룬 우리나라 최초의 책인 조선후기 문인 이옥(李鈺)의 '연경'(烟經)을 소개했다. 남녀노소 모두 담배를 즐긴 조선후기 담배문화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애연가들을 북돋아주자"는 생각까지 든다.
"내 담배 끝에서 나는 연기와 내 펜촉의 잉크가 똑같이 편안하게 흐른다면 나의 저술은 아르카디아(바로크문학의 허식을 배제하고 자연성을 회복하자는 문학운동)에 있다."
애연가였던 발터 벤야민(독일 문화비평가·1892~1940)의 말이다. 원제 'A Global History of Smoking(2006)'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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