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전으로 꽃핀 화가와 아내의 사랑… 박항섭 유작전

  • 입력 2006년 9월 1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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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섭 ‘감의 계절’.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박항섭 ‘감의 계절’. 사진 제공 갤러리현대
“나 자신이 미(美)라는 것에 대한, 아니 그보다도 그리고 싶은 것에 대한 좀 더 절실한 갈망이 있다.”

박항섭(1923∼1979·사진)의 이 말은 그의 삶 자체를 보여 준다. 대부분 교사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시절에, 그림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미술 교사직을 그만두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그를 아껴 벽화를 맡겨 도움을 주었지만 늘 가난했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박항섭 유작전이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두가헌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박항섭은 한국 근현대 서양화 1세대로, 구상 계열이면서도 독보적으로 자유로운 형식의 그림을 선보인 화가다.

이번 전시회는 1981년 현대화랑의 유작전, 1989년 호암갤러리의 10주기전 이래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얼굴’ ‘하일(夏日)’ ‘정(情)’ ‘감의 계절’ 등 1970년대 중반 완성한 말년의 작품 23점이 나왔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부인 이효애 여사는 “화가 박항섭을 제대로 조명할 자료를 남겨야 한다”며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않고 보관해 왔다. 올해 6월 이 여사가 작고한 뒤 화가의 가족과 그를 아끼던 소장가들이 간직해온 작품을 내놓아 추모전을 마련하게 됐다.

그의 그림은 대개 소들이 있는 동네 어귀, 물고기가 있는 강가, 포도나무와 석류 같은 자연과 어우러진다. 황해 장연에서 나고 자랐지만 6·25전쟁으로 피란을 떠나야 했던 화가에게 고향이란 늘 그리운 곳이요 예술적 모티브였다.

거친 붓질과 다사로운 색감으로 표현한 시골 풍경에서 화가가 늘 마음에 두었을 고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는 사실을 세밀하게 재현하지 않고 기억 속의 흔적과 자취를 끄집어내 추상적으로 재구성한다. 적갈색, 황갈색, 회청색 같은 따뜻한 색깔로 고향의 이미지를 표현한 그림은 화가 자신만의 고향이 아니라 인간의 고향, 인간 존재의 시원에 대한 상념을 끌어낸다. 02-3210-2111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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