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이 기획한 뮤지컬 ‘이’는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이 된 연극을 뮤지컬로 만든다는 점 때문에 관심을 모아온 작품. 4월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참석한 오디션 끝에 오만석 엄기준 등 뮤지컬계의 스타들이 캐스팅됐다.
하지만 핵심 배역인 ‘연산’의 오만석과 ‘공길’의 엄기준 등 주연들은 캐스팅 결과가 나온 뒤 각각 드라마와 영화 출연을 이유로 모두 작품에서 빠졌다.
최근 ‘포도밭 그 사나이’(KBS2 TV)로 대중적 인기를 모은 오만석은 다음 달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 tvN의 드라마 ‘하이에나’의 출연을 이유로 지난달 초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엄기준도 영화 ‘피아노의 선율’ 출연을 계기로 빠졌다.
‘연산’ 역은 오만석과 김법래가 더블 캐스팅됐으나 이제 김법래 홀로 공연을 떠맡게 됐고 트리플 캐스팅이었던 ‘공길’은 엄기준이 빠진 뒤 더블 캐스팅으로 무대에 오른다.
서울예술단 측은 “‘티켓 파워’가 컸던 두 배우가 빠져나가 고민”이라며 “배우들에게 서운하지만 마음이 떠났는데 붙잡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캐스팅이 발표된 지 ‘서울 공연의 메인 배우(오만석 엄기준)가 모두 출연한다’는 조건으로 10월 12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뮤지컬 ‘이’의 국내 초연을 유치했던 부산시민회관 측도 피해를 봤다. 부산시민회관의 김진호 공연기획팀장은 “캐스팅 변경 소식이 알려진 뒤 예매 취소도 잇따라 큰 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뮤지컬 동호회 게시판에는 “오만석과 엄기준 때문에 뮤지컬 ‘이’를 기다렸는데 서운하다” “배우들이 무대보다 영화나 드라마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이어졌다.
오만석의 소속사인 프레시 엔터테인먼트 한승조 이사는 “오만석은 뮤지컬 ‘이’에 애착이 많았지만 소속사 입장에서는 배우가 대중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방송에 주력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엄기준은 “영화사 측에서 뮤지컬 공연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촬영 스케줄을 조절해 주기로 했으나 여의치 않게 돼 할 수 없이 영화를 선택했다”며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들의 이런 행동에 대한 시각은 곱지 않다. 한 뮤지컬 관계자는 “오디션을 보지 않았더라면 다른 배우가 역할을 맡을 수도 있었다”며 “뮤지컬과 영화(드라마)를 모두 욕심내다가 막바지에 무대를 버린 것은 관객은 물론 동료 배우에게도 피해를 끼친 것”이라고 말했다.
조행덕 악어컴퍼니 대표는 “앞으로 뮤지컬 배우들이 방송이나 영화로 진출하는 게 늘어나면 이런 일은 다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뮤지컬계도 이를 계기로 스타캐스팅에서 콘텐츠 위주로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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