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구슬픈 목소리가 들려온다. 매우 낮고 느린 어조로 부르는 동요 ‘오빠생각’.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매주 한 명씩 우리 사회의 유명 인사를 초청해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시의 한 구절을 낭독하고 노래를 부르는 ‘낭독의 발견’이란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무대에서 한 정신과 의사가 상념에 잠긴 채 동요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저어새가 짝을 부르듯,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던’ 세상의 모든 오빠들을 기다리는 여동생의 목소리. 오빠생각의 주인공, 바로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였다.
2001년 나온 이 책은 저자에게 ‘남성심리전문가’라는 칭호를 확실하게 붙여 준 심리평전이다. 이 책의 흥미로움은 우리가 흔히 동형의 범주에서 비교하던 세간의 비교 틀을 넘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자들을 한테이블에 마주앉게 한 대담한 역발상에 있을 것이다. 즉, YS 하면 DJ, 김우중 하면 정주영. 이런 비교의 틀을 깨고 그녀는 이건희에게 조영남을 가져다 붙이고, 장세동에게 전유성을 가져다 붙인다. 어째 이들에게 비슷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싶은데, 저자의 조리 있고 섬세한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덧 무릎을 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교회에 가서 기도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고, 늘 사진을 찍을 때면 뒷짐을 지는 김영삼 대통령의 모습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진 오만함을 짚어내고,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다는 비빔밥과 설렁탕을 시켜 먹은 김우중 회장에게서는 조증(躁症)의 증후를 찾아낸다. 반면 이외수, 조영남, 마광수처럼 시대를 거스르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 헤매는 자유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의 권력자로 대한민국 남성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가면을 벗겨 내고 그 밑의 열등감이니, 나르시시즘이니,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내면 풍경을 보여 주는 저자의 통찰력이 새삼 든든하고 매섭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강준만 교수가 사회적인 관점에서 현대 인물 사상을 펼친다면, 저자는 심리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현대 남성들을 연구한 첫 케이스인 셈이다. 아울러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남성성의 신화를 깨고 자유롭고 부드럽고 융통성 있는 새로운 남성성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 상담·행동치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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