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가족]<상>新고부갈등

  • 입력 200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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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내 인간 관계가 급속히 변하고 있다. 특히 결혼으로 만들어지는 새 가족 관계의 변화가 크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공식은 깨지고 있다.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아버지, 시아버지에게 당당한 며느리, 사위를 꾸짖는 장모가 늘어나고 있다. 또 아들 같은 사위, 자매 같은 시누이와 올케 등 새로운 연대가 등장했다. 부모 자식 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신(新)가족 관계를 상, 중, 하로 짚어본다. 》

주부 김모(43·서울 강북구 미아동) 씨는 시아버지(70)의 지나친 살림 간섭에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다. 시아버지가 주말에 불쑥 찾아 와 가스레인지를 청소한다며 뜯어놓는가 하면 특수코팅 프라이팬을 수세미로 박박 닦아 망쳐 놓기도 한다.

김 씨는 “잔소리를 하고 반찬 투정이 심한 시아버지가 나타나면 초긴장”이라며 “전직 공무원이었던 시아버지는 혈기왕성하고 대범하셨지만 퇴직하신 뒤 너무 변했다”고 말했다. 주부 윤모(40·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명절, 제사 때만 되면 골치가 아파온다. 시어머니는 “대충대충 하라”고 말하지만 시아버지는 어림도 없다. 너무 엄해서 명절날 친정집 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명절 전날 꼭두새벽부터 시댁에 가서 고생하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 없는 시아버지가 서운할 때가 많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했건만 시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속앓이 하는 며느리가 늘고 있다. 특히 퇴직 이후 사회와 담을 쌓다시피 한 시아버지가 과거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어 가족관계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기 쉽다. 종교 활동이나 동창회 등을 하며 시대 정보에 빠른 시어머니들과는 대조적이다.

좋은 가정 만들기 연구소 문은주 소장은 “예전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인 고부갈등이 많았는데 요즘엔 10건의 상담 가운데 4, 5건이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라고 말했다.

이혼 후 재혼한 시아버지의 등장도 며느리에겐 새로운 변화다. 시아버지가 새 부인과 사랑에 빠져 며느리에게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모(37·서울 서초구 반포동) 씨는 “시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손자 명의로 만들어 준 저축 통장을 달라고 했을 때는 많이 서운했다”고 말했다.

시아버지-며느리의 갈등이 늘어난 것은 며느리들이 과거보다 당당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고학력에 경제력을 갖춘 며느리들은 옛날처럼 죽어지내지 않는다”며 “며느리는 변했는데 시아버지는 그대로이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아버지들의 마음고생도 이만저만 아니다. 3년 전 상처한 김모(70·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씨는 “며느리가 너무 이기적”이라며 “안부 전화도 하지 않다가 일 있을 때 애를 맡기면 얄밉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모와 사위의 갈등도 새로운 양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진’ 장모들의 사위 대접은 예전 같지 않다. 자녀 양육 등으로 인한 처가살이도 갈등의 소지다. 회사원 송모(35·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씨는 “아내의 연봉이 많아 장모가 결혼을 반대했다”면서 “사위에게 대놓고 잔소리를 하거나 불만을 드러내는 장모를 보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서운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맞벌이하면서 2년째 처가살이하는 금모(36·회사원) 씨는 “아이들이 외가 식구만 따르고 친가 식구를 낯설어 한다”면서 “친가보다 처가의 경조사를 먼저 챙기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처가살이한다고 무능하게 보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울 때 서럽다”고 말했다.

맏딸을 시집보낸 이모(58) 씨는 “내 딸도 가르칠 만큼 가르쳤고 결혼시킬 때도 해 줄 만큼 해 줬다”면서 “나도 사위에게 할 말은 하고 살고 딸에게도 ‘무조건 참아라’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 노인의 전화 강병만 사무국장은 “참고 지내느라 드러나지 않았던 일들이 자기주장이 강한 시대이다 보니 드러나는 것일 뿐 시댁이나 처가 관계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족도 많다”며 “다만 시아버지에게는 변한 시대를 받아들이라고 충고해 주고 장모에게는 사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기(氣)를 살려주는 게 딸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이라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박완정 사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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