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랐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정진수(41) 씨가 경찰서 외사계에서 조사를 받은 것은 지난해 3월 말이었다. 종교자문관 겸 아랍어 통역(군무원 5급)으로 자이툰부대에서 1년간 근무하고 귀국한 직후였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 영화에나 나옴 직한 스토리가 자신의 얘기가 될 줄이야…. 첩보의 내용은 “한국 사람인데 이라크에서 귀국했다. 그가 운영하는 ‘살람’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출두에 앞서 경찰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별것 아니니 한번 와서 털고 가는 게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는 7시간이나 계속됐다. 자이툰부대 근무 시 행적과 파키스탄 유학 당시의 생활 등에 대한 질문이 반복됐다. 결국 ‘첩보’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에게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자이툰부대에서 병사들과 같이 방탄복 입고 순찰을 다녔는데…한마디로 코미디죠.”
2006년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어떤 것일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따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중앙성원에 들렀다가 무슬림이 된 정 씨는 25년째 독실한 신자로 살고 있다. 그는 한국 무슬림들에게는 꽤 알려진 인물. 중앙성원 근처에서 1999년부터 터키 음식점 ‘살람’을 운영해 매스컴도 몇 차례 탔다.
해 뜨기 1시간 전, 정오, 오후, 일몰 후, 밤 등 하루 다섯 차례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린다. “한국에서는 어느 쪽으로 절을 하느냐”고 했더니 “대략 인천 방향”이라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술 안 먹고, 상갓집에서 절 안 하고…약간의 오해도 있지만 뭐 그 정도지요.”
그는 한눈에 외향적이고 활달한 사람으로 보였다. 거리낌 없이 할 말을 하는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그의 삶은 확연히 변했다. “그때부터 말하는 것이 겁이 나더라고요. 오해받지 않을까 해서요.”
1989년부터 그가 7년간 유학한 파키스탄 국제이슬람대(IIUI) 졸업장도 파키스탄에 다녀오면 오해받을까 걱정돼 받아 오지 못했다. 같이 공부했던 동창생들과의 국제전화도 조심스럽다. 중동 정세와 같은 민감한 사안은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무역업도 하기 때문에 돈거래를 해야 하는데 ‘테러 자금’으로 오해받을까 봐 그것도 포기했다.
정보기관, 경찰, 군대의 자문에도 많이 응하지만 거꾸로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슬림끼리 ‘넌 어디 끄나풀이냐’고 묻는 것은 흔한 농담이다.
한국인 무슬림은 등록 인원으로 4만 명. 무슬림이 아니면 중동에서 사업하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에 신자로 등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 씨는 무슬림에 대한 일반의 오해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코란’이란 말은 이슬람에 없습니다. 오히려 ‘종교에는 강제가 없나니’라는 말이 쿠란에 있지요.” 그는 이슬람이 ‘폭력적’이란 오해가 이슬람에 대한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
최근 문제가 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이슬람교 발언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우리 내부에서는 별 반응이 없다”는 것이 정 씨의 설명이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정 씨의 휴대전화가 연방 울렸다. “정보기관입니다.” 정 씨가 씽긋 웃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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