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딩패스]도박장까지 쫓아가 도박병 치유하는 미국

  • 입력 2006년 9월 22일 02시 59분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지요. 그건 정말 마술 같았어요. 일상의 걱정과 좌절, 두려움을 송두리째 몰아내 주니까요.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지요. 한 번만 맞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한 번은 또 다른 한 번을 재촉했고, 결국은 돈과 시간과 자존심을 송두리째 날렸어요. 그리고 남은 것은 망가진 저 자신을 한탄하는 고통뿐입니다.’

네바다 주 상습도박 치유위원회(Nevada Council on Problem Gambling)의 홍보 팸플릿에 실린 한 상습 도박자의 한탄이다. 거기에는 분명히 적혀 있다. 도박은 오락이 아니라고. 알코올 중독처럼 상습 도박이라는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치유위원회가 이 팸플릿을 나눠 주며 홍보하는 장소는 라스베이거스 매캐런 국제공항의 대합실. 매일 24시간 통행인이 많은 길목에 상주하며 활동을 펼친다. 알려졌다시피 이 공항은 대합실에까지 슬롯머신이 설치된 도박장이다. 따라서 치유위원회의 홍보 부스는 도박장 안에 있는 셈. 이렇듯 네바다 주의 상습 도박 방지 및 치유 활동은 적극적이고 공개적이다.

우리는 어떨까. 정부가 할 일을 카지노가 떠맡았다. 한국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가 두 곳(서울, 강원 정선군) 있지만 모두 강원랜드가 운영한다. 그 위치를 보면 적극적인 의지를 읽기도 어렵다. 서울 센터는 강원랜드 서울사무소가 있는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에, 정선 센터는 강원랜드 카지노호텔 인근 건물에 있다.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를 흥청망청하는 도박 도시로만 본다. 그러나 실제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의 순기능(세금 조달)을 확대하기 위해 정교하게 도박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도시다. 그런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도박 산업의 화려한 외면이 아니다. 도박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승화시킨 ‘통제와 규제’의 첨단 노하우다.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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