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로 간 조선 무희의 삶…김탁환씨 소설 ‘리심’ 출간

  • 입력 2006년 9월 22일 02시 59분


한 여자가 있다. 19세기 말 조선의 무희. 조선에 부임한 초대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과 사랑에 빠져 함께 파리로 떠난 여자. 낯선 땅에서 새로운 문물을 배우는 데 기꺼이 마음을 열었지만, 약소국의 비애를 느끼고 좌절한 여자. 2대 프랑스 공사 이포리트 프랑댕의 회고록 ‘한국에서(En Cor´ee)’에 등장하는 여성이다.

이 여성에 매혹된 2명의 작가가 동시에 그 삶을 소설로 옮겼다. 그중 김탁환(38) 씨의 장편 ‘리심’(전3권·민음사)이 먼저 나왔다. 한 일간지에 연재 중인 신경숙 씨의 장편소설과 소재가 같아 화제가 됐다.

김 씨는 발품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자료를 찾고 취재를 해서 작품을 쓰는 김 씨의 장기는 ‘리심’에서도 잘 발휘된다. 프랑댕의 짧은 기록을 들고 프랑스 현지답사에 나선 작가는 콜랭과 리심이 정식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 콜랭이 리심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모로코와 일본을 들렀다는 것 등의 사실을 새롭게 찾아내고 여기에 소설적 상상력을 풍성하게 보탰다.

중세 조선에서 근대 유럽으로 뜀뛰기하듯 오가면서 힘겹게, 그러나 용기 있게 살아간 리심의 모습은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혁파하고 근대 사회로 탈바꿈하고자 진통을 겪던 개화기 조선의 혼란상과 겹쳐진다. 그래서 이 소설은 조선인과 서양인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니라 치열했던 역사를 복원하고 환기하는 이야기가 된다. 작가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리심의 심정에 대한 탐구다. 중세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선이 근대에 눈뜬 신여성과 화합하기란 불가능했다. 리심의 마지막 선택은, 그러므로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이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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