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가족-부활이냐 몰락이냐’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 가족-부활이냐 몰락이냐/프랑크 쉬르마허 지음/장혜경 옮김/206쪽·1만2000원·나무생각

“가족은 생존의 보증수표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발행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이런 결론은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사실 현대문화의 모든 지표는 가족을 촌스럽거나 아니면 짐스러운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기원에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프로이트는 가족을 전쟁터라고 했고, 토마스 만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는 가족관계를 일종의 저주로 봤다.

그들에게 가족은 최초의 살인(카인과 아벨)과 친부 살해(오이디푸스)의 원초적 기억이 꿈틀대는 어두운 지하실이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쓴 제임스 조이스에게 진정한 영웅의 조건은 가족에서 해방돼 홀로 고독하게 세상과 맞서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를 낭만이고 허구라고 비판한다. 1844년 10월부터 6개월간 미국 돈너 계곡에 갇힌 채 추위와 굶주림에 맞서 싸워야 했던 70여 명의 서부개척민이 있었다. 40명의 희생자를 낳았던 사투 속에서 가장 높은 생존율을 기록한 그룹은 고독과의 싸움에 익숙한 독신남이 아니라 노약자가 많은 대가족이었다. 15명의 독신남 중 생존자는 3명에 불과했지만 대가족은 아무리 노약자가 포함됐더라도 가족의 크기에 비례해 높은 생존율을 기록했다.

가족의 위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최대의 화재재난인 1973년의 서머랜드 호텔 화재사건에서도 확인된다. 사망 51명, 부상 400여 명의 기록을 남긴 이 화재에서 가족 구성원의 67%가 서로를 찾기 위해 움직인 반면 친구 사이인 사람들은 75%가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저자는 복지국가의 신화가 무너진 상황에서 출산율 하락과 노령화로 인한 가족 해체가 낳을 파국을 막기 위해 가족의 재탄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아이는 이타주의라는 우물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부어야 하는 일종의 마중물과 같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희생을 배우듯이 아이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는 것은 형제자매를 통해서다.

임신과 육아의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도 중요하다. 돈너 계곡의 진정한 영웅이 어머니와 아내들이었던 것처럼 여성은 남성들보다 친족에 대한 애착이 월등히 강하다. 문제는 오늘날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를 촌스러운 것으로 묘사하는 TV 드라마의 이데올로기에 중독되고 토크쇼로 맺어진 가상의 네트워크에 몰두해 가족이라는 현실의 네트워크를 외면한다는 점이라는 지적이다.

자, 이쯤이면 이 책의 복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남성들이여, 인류를 구원하고 싶다면 TV 모니터 앞에 앉은 여성들을 유혹해 열심히 아기를 만들라. 원제 ‘Minimum’(2006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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