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는 무서워해도 개미는 그저 그런 게 현실이다. 대략 무시하거나 죽여도 그만 안 죽여도 상관없는 벌레. 이것이 바로 개미의 위상이다.
하지만 개미의 입장은 다르다. 여기 미국 산 개미 조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개미 인생? 불안의 연속이죠. 인간들 눈치 봐가며 음식물을 옮겨야 하고 행여 발각될 때면 발에 불나도록 뛰어야죠. 인간들은 파괴자예요.”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 쑤셔봤던 개미집. 그때마다 개미들은 죽어난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불탄 나머지 ‘조크’라는 개미는 파괴자에 대한 응징을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28일 개봉하는 워너브러더스 애니메이션 ‘앤트불리’의 모티브다. “개미 주제에 건방져”라고 할지 모르지만 한번쯤 약자에게 귀를 기울여 주자. 꽤나 그럴싸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니까.
○“넌 개미야”… 역지사지(易地思之)
얼굴의 3분의 1을 덮는 커다란 뿔테안경, 콧등을 뒤덮은 주근깨…. 이것이 열 살 소년 루카스의 첫 모습이다. 새로 이사 온 마을에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이 소심한 소년은 동네 친구들로부터 집단따돌림과 구타를 당하기 일쑤다. 그런 그의 유일한 분풀이 대상은 바로 개미집. 발로 밟고 호스로 물을 뿌리는 등 억눌린 본성을 드러낸다.
이에 마법사 개미 조크는 개미만큼 작아지게 하는 묘약을 만들어 잠자는 루카스의 귀에 뿌린다. 온 세상이 커진 것을 발견한 루카스는 개미들에게 끌려가고 ‘개미 법정’에 선다. 그러나 “개미처럼 교육을 시켜보자”라는 여왕개미의 말에 루카스는 간호사 개미 호바로부터 개미 생활을 경험한다.
벽 기어 올라가기, 음식물 옮기기 등을 경험하는 루카스를 통해 개미들은 ‘앙갚음’보다 ‘이해’에 중점을 둔다. “너네 인간들은 왜 하품하니? 징그러워”라는 개미나 “너네는 사탕을 달콤한 돌이라고 하니?”라고 묻는 루카스의 모습은 그간 서로 쌓았던 담을 조금씩 허무는 과정이다. 이는 영화 초반 “넌 개미야”라고 주지시키는 조크의 모습과 영화 후반 “난 개미다”라며 벽을 타고 올라가는 루카스의 모습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함께 뭉치자”… 상부상조(相扶相助)
‘앤트불리’는 동명의 미국 베스트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를 제작한 사람은 바로 영화배우 톰 행크스. 그는 “아들과 함께 책을 읽다가 인간과 개미가 함께하는 모험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조크와 호바가 주연 개미들이지만 영화는 수백만 마리의 개미를 등장시킨다. 이들은 ‘달콤한 돌’(사탕)을 신속하게 줍기 위해 팀을 이루어 훈련을 하는 등의 상부상조를 강조한다. “왜 내가 같이 해야하지?”라며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루카스의 모습과는 상반된다. 이에 조크는 “개미들도 각자 개성도 다르지만 함께 힘을 합치면 큰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하다. 영화는 ‘개미와 베짱이’를 통해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개미의 근면 성실함, 그리고 단체 생활의 장점을 되풀이한다.
그나마 잠에서 깬 루카스가 “쳇, 꿈이었잖아”라고 할 것 같지만 그가 겪은 모든 모험들은 진짜 일어난 일이다. 니컬러스 케이지, 줄리아 로버츠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목소리도 흥미롭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난 꼬마들이 걱정이다. 집 마루를 기어다니는 개미들에게 “나도 루카스처럼 개미집 구경하고 싶어”라고 말할까봐.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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