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툇마루에 놓여 있던 늙은 호박의 푸근한 느낌을 닮은 HD애니메이션 ‘호박전’(연출 유진희)이 6일 오후 5시 5분 EBS에서 방영된다. 둥글넓적 우리네 이웃 같은 캐릭터들이 가득한 이 애니메이션은 우리의 조상과 전통 음식을 소재로 명절의 분위기를 코믹하게 그린 토종 애니메이션이다.
충청도 호박마을 ‘호’씨 집안의 며느리들은 대대로 호박전을 잘 부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호박전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명절 아침, 호 씨 집안의 5대 독자 맹이가 사라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혼자 남은 누나 강이는 동생 맹이를 납치한 삼신할머니와 부엌에서 마주친다. 삼신할머니와 강이의 싸움에 조왕신이 끼어들고 부엌의 맷돌, 키, 절구, 약탕기 등 가재도구들이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리고 제사음식을 먹기 위해 하나 둘 집으로 들어선 호 씨 집안의 조상신들과 삼신할머니가 맞닥뜨리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번진다.
차례와 전통음식 같은 한국적 소재를 다룬 ‘호박전’은 그림부터 서양이나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과 구별된다. 눈과 머릿결을 치켜올린 삼신할머니와 호박전처럼 둥글둥글한 가족들의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로 친근하다. 조상신들도 역시 우리가 차례를 지낼 때 느끼는 근엄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맛있는 음식을 빨리 먹고 싶어 안달을 하기도 하고, 서로 잔소리를 하거나 다투기도 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다.
EBS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이 지원하고 한호흥업이 참여한 이 작품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2002년 우수 파일럿에 선정된 바 있는 3분짜리 영상물을 40분 분량의 방송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 이 작품은 6월 22일∼7월 17일 서울애니시네마에서 단독 개봉된 뒤 부천국제만화축제, 대구 동성아트홀, 춘천 애니메이션박물관 등에서 상영됐다.
연출자인 유진희 감독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옴니버스 장편 애니메이션 ‘별별이야기’ 중 첫 번째 에피소드인 ‘낮잠’으로 제10회 카툰스온더베이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유니센트-깜빠니아지역상’(최우수교육적작품상)을 수상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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