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요변수로 떠오른 기상이변

  • 입력 2006년 10월 9일 16시 32분


역사의 주체로서 인간행위에 초점을 맞춰왔던 근대역사학에 대한 도전으로서 기후의 영향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출간된 '자연재해와 유교국가'(일조각)는 중국 한대(漢代)의 자연재해가 유교를 국가 이념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석우 박사의 2003년 서강대 박사학위논문을 발전시킨 이 책은 중국 한대 역사기록에 나타난 자연재해와 이에 대응하는 황정(荒政·기근때 백성을 구하는 정책)을 자세히 분석했다.

"중국 24사 전체가 재황(災荒)사가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양의 사서에는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한 기록이 가득하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자연재해의 상당수가 부덕한 정치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이해하는 전통적 재이(災異)사상의 산물로 간주해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김 박사는 이를 세심히 분류해 70%가량은 신뢰할만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대부터 당대까지 1000여년의 역사 중 전한(前漢)시대는 황하의 범람피해가 가장 컸고, 후한시대는 지진사가들에 의해 청대 다음으로 지진피해가 큰 시대로 꼽힌다.

이렇게 점증하는 자연재해가 통일국가시대인 한대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국가의 안정적 유지가 국정운영의 첫 번째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이 과정에서 '유교의 국교화'가 아니라 '제국의 유교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전자가 황제통치의 도덕적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교를 적극 동원했다는 주장이라면 후자는 점증하는 자연재해에 대처하기 위해 민본주의를 강조하는 유교를 수동적으로 채택했다는 주장이다.

'엘니뇨:역사와 기후의 충돌'(새물결)은 세계적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꼽히는 엘니뇨가 인류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했다. 이 책은 1812년 나폴레옹 군대와 1941년 히틀러 군대의 러시아침공 실패가 엘니뇨로 인한 혹한의 결과이며 중국 명과 청의 몰락도 각각 1640년~41년과 1877~78년 엘니뇨에 의한 대기근의 산물임을 밝혀내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한림대 한림과학원 수요세미나에서 유성(운석)과 혜성 등의 외계의 물체가 지구 대기권에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자연이상 현상이 인류역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외계충격설'을 조선왕조에 접목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기상이변의 전체기록을 분석한 결과 1500~1750년의 기상이변 기록이 전체의 83%를 차지할 만큼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런 기록은 유성출현 등으로 인한 유럽의 17세기 위기론과 일치한다"며 "이런 기상위기는 종교현상과 연결돼 유럽에선 16세기 중반부터 70여 년 간 나타난 '마녀사냥'과 종교개혁으로, 천재지변을 정치문제로 인식하는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선 사화와 당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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