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자연재해와 유교국가'(일조각)는 중국 한대(漢代)의 자연재해가 유교를 국가 이념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석우 박사의 2003년 서강대 박사학위논문을 발전시킨 이 책은 중국 한대 역사기록에 나타난 자연재해와 이에 대응하는 황정(荒政·기근때 백성을 구하는 정책)을 자세히 분석했다.
"중국 24사 전체가 재황(災荒)사가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양의 사서에는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한 기록이 가득하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자연재해의 상당수가 부덕한 정치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이해하는 전통적 재이(災異)사상의 산물로 간주해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김 박사는 이를 세심히 분류해 70%가량은 신뢰할만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대부터 당대까지 1000여년의 역사 중 전한(前漢)시대는 황하의 범람피해가 가장 컸고, 후한시대는 지진사가들에 의해 청대 다음으로 지진피해가 큰 시대로 꼽힌다.
이렇게 점증하는 자연재해가 통일국가시대인 한대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국가의 안정적 유지가 국정운영의 첫 번째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이 과정에서 '유교의 국교화'가 아니라 '제국의 유교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전자가 황제통치의 도덕적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교를 적극 동원했다는 주장이라면 후자는 점증하는 자연재해에 대처하기 위해 민본주의를 강조하는 유교를 수동적으로 채택했다는 주장이다.
'엘니뇨:역사와 기후의 충돌'(새물결)은 세계적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꼽히는 엘니뇨가 인류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했다. 이 책은 1812년 나폴레옹 군대와 1941년 히틀러 군대의 러시아침공 실패가 엘니뇨로 인한 혹한의 결과이며 중국 명과 청의 몰락도 각각 1640년~41년과 1877~78년 엘니뇨에 의한 대기근의 산물임을 밝혀내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한림대 한림과학원 수요세미나에서 유성(운석)과 혜성 등의 외계의 물체가 지구 대기권에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자연이상 현상이 인류역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외계충격설'을 조선왕조에 접목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기상이변의 전체기록을 분석한 결과 1500~1750년의 기상이변 기록이 전체의 83%를 차지할 만큼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런 기록은 유성출현 등으로 인한 유럽의 17세기 위기론과 일치한다"며 "이런 기상위기는 종교현상과 연결돼 유럽에선 16세기 중반부터 70여 년 간 나타난 '마녀사냥'과 종교개혁으로, 천재지변을 정치문제로 인식하는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선 사화와 당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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