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염쟁이 유씨’ 유순웅 “죽음으로 삶을 이야기했지유”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0분


“유해진 아녀유” ‘염쟁이 유씨’의 주인공 유순웅 씨. “영화배우 유해진과 너무 닮았다”는 말에 그는 “그런 얘기를 자주 듣지만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유해진도 같은 청주 출신이고 청주에서 연극을 했지만 아쉽게도 한무대에 선 적은 없다”며 웃었다. 박영대 기자
“유해진 아녀유” ‘염쟁이 유씨’의 주인공 유순웅 씨. “영화배우 유해진과 너무 닮았다”는 말에 그는 “그런 얘기를 자주 듣지만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유해진도 같은 청주 출신이고 청주에서 연극을 했지만 아쉽게도 한무대에 선 적은 없다”며 웃었다. 박영대 기자
《요즘 대학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사람은 바로 ‘염쟁이 유씨’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 한복판에서 9개월째 1인극 ‘염쟁이 유씨’를 공연하며 지방 연극의 힘을 보여 주고 있는 ‘연극쟁이 유씨’, 유순웅(44) 씨다. ‘염쟁이 유씨’는 2004년 충북 청주시에서 초연된 창작극. 평생 남의 시신을 수습해 온 주인공이 마지막 염을 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다. 지방 공연 2년 만인 올 2월 서울에 입성한 뒤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까지 연장 공연을 거듭해 왔다. 21일 일단 막을 내렸다가 몇 군데 지방 공연을 거쳐 11월 18일부터 대학로에서 다시 연장 공연에 들어간다. 요즘 공연 중인 83석 규모의 소극장 두레홀(02-741-5970)은 연일 객석이 꽉 찬다.》

대학로 무대에서 처음 공연하는 그는 “대학로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게 제일 신기하고 부러웠다. 지방에서는 1주일만 공연해도 장기 공연인데, 여기는 관객이 끝도 없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1인극이 아니었으면 대학로 진출은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1인극은 망해도 혼자 망하면 되니까. 대학로 대관료가 어찌나 비싼지 사람 잡아먹는 곳 같더라고요. 1000만 원 적자 보면 성공이라고 마음먹고 올라왔는데 다행히 적자는 면했고 풍족하진 않아도 스태프에게 좀 나눠 줄 정도는 됐죠.”

지방 창작극이 서울에서 이렇게 장기 공연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그는 “조용한 반란”이라고 표현했다.

“지방 연극 환경은 정말 열악해요. 서울에서 히트한 연극을 몰래 가져다가 올리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그러면 평생 이류, 삼류밖에 안 됩니다. 지방 관객들도 서울의 오리지널을 보러 올라오지 흉내 낸 연극은 안 보려 하거든요. 결국 지방 연극도 좋은 창작으로 가야죠. 이번 제 도전이 자극이 되면 좋겠어요.”

그는 대학(한신대 기독교교육과) 4학년 때 신병 치료차 고향인 청주로 내려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아 지금까지 20년간 지역문화운동을 해 왔다.

9개월 내내 서울에서 공연한 뒤 거의 매일 오후 11시 40분 막차를 타고 청주로 내려가는 생활을 고수했다. “지방 문화가 살아야 서울 문화도 풍성해진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서울에 눌러앉았다가 혹시라도 ‘평생 지방에서 연극하며 지역문화 살린다더니 너도 별수 없구나’라는 말을 들을까 봐 그랬죠.”

후배 작가가 그를 위해 썼다는 ‘염쟁이 유씨’의 대본에는 ‘연극쟁이 유순웅을 위한 일인극’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마당극으로 다져진 그의 넉살과 애드리브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에피소드 하나. 공연할 때마다 염쟁이 유씨는 관객에게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 대부분 학생이나 회사원이었지만 한번은 그의 연극을 보러 왔던 어느 연극배우가 얼떨결에 “저도 연극배우인데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이 사람아, 저도라니. 난 연극배우가 아니지, 난 염쟁이지” 하고 받아넘겨 객석을 웃겼다.

아닌 게 아니라 지방 공연까지 치면 그는 2년째 염쟁이로 살고 있다. 공연을 하면서 시신(40kg 무게의 모형)을 놓고 염습, 반합, 소렴, 대렴 등 직접 염을 해 보인다.

1인 10역을 연기하는 염쟁이 유씨의 원맨쇼에 배꼽을 잡던 관객들은 극 후반부에 염쟁이 유씨가 정성껏 닦고 습해 준 ‘마지막 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서 눈물을 쏟는다.

염쟁이 유씨가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어. 그런디 죽어서 땅에만 묻히고 살아남은 사람의 가슴에 묻히지 못하면 그게 진짜 죽는 게여”라고 말할 때 관객들은 ‘어떻게 죽느냐’를, 나아가 ‘어떻게 사느냐’를 곱씹게 된다. 하긴 죽음만큼 삶의 소중함을 생생히 일깨워 주는 좋은 교과서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평생 마지막 염을 끝낸 염쟁이 유씨의 마지막 대사는 마음에 오래 남는다.

“죽어 석잔 술이 살아 한잔 술만 못허다구들 허구, 어떤 이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들 허는데, 사실 죽음이 있으니께 사는 게 귀하게 여겨지는 게여. 삶이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처럼 모든 건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보태져서 이루어지는 벱이여. 죽는 거 무서워들 말어.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여러분도 잘들 사시게….”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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