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로맨티시스트’… 신승훈
열 번째 앨범을 발표하는, 데뷔 16년의 발라드 가수 신승훈에게 칭찬 섞인 질문부터 던졌다. “갈수록 회춘하는 것 같네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준비한 듯 얘기를 쏟아냈다.
“회춘이 아니라 촌티를 벗은 거죠. 16년 전 충청도 촌놈이 서울 올라와서 2만 원짜리 조끼 입고 노래 부르다 지금은 코디네이터도 생기고…. 그래도 이번엔 꽃 들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했죠.”
그러고 보니 그가 좀 달라진 듯하다. 이번에 나온 10집 앨범의 제목도 ‘더 로맨티시스트’고 늘 비련의 주인공처럼 노래를 불렀는데 꽃을 들고 온화한 미소를 짓다니…. ‘보이지 않는 사랑’ 같은 슬픈 발라드에 스스로 질린 것일까?
“이제 슬픔에도 종지부를 찍고 싶어요. 팬들도 이제는 아줌마, 또는 직장에서 과장 부장이더라고요. 저와 같이 늙어가는 그들에게 슬픈 사랑 노래만 들려줄 순 없잖아요. 이제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2년 5개월 만에 발표한 10집은 그에겐 전환점이다. 9장의 앨범이 비련의 주인공 같은 발라드 노래였다면 이번 앨범부터는 우정과 모성애 등 아가페적인 사랑을 담겠다는 의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길 바란다”는 아이리시풍의 ‘드림 오브 마이 라이프’부터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바치는 4부작 시리즈 ‘레이디’ ‘시간을 뒤로 걸어’ ‘지금 만나러 갑니다’ ‘못된 기다림’ 등 15곡에는 과거의 신승훈과 로맨티시스트 신승훈이 혼재돼 있다.
“사실 더 걱정되는 건 ‘또 신승훈표 발라드네’라는 비판이에요. 16년간 저의 최대 라이벌이자 적은 바로 제 목소리인 것 같아요. 마치 햄버거나 피자 옆에 있는 ‘콜라’라고 할까요? 늘 마시지만 ‘콜라 맛있네’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그는 “소주 한잔 마시고 싶네…”라며 한숨쉬다가 “‘발라드의 황제’라는 칭호도 받은 내 자신이 ‘배부른 돼지’ 같다”며 웃는다. 로맨티시스트가 된 이상 그는 앞으로 후배 가수들에게 곡도 주고 프로듀서도 자처하며 살아볼 예정이다. 데뷔 16년간 솔로인 그가 제대로 로맨티시스트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젠 이런 소리도 지겨울 텐데.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
“이래봬도 진짜 로맨티시스트예요. 이젠 저를 떠난 여자들도 결혼했고 팬들도 ‘오빠 이젠 결혼해도 돼요’라며 절 놓아주는 분위기예요. 앞으로 희망적인 사랑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언젠간 제 인생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가 앞에 나타나 주겠죠.”
● ‘더 발라드’… 성시경
9일 오후. 흐릿한 안개를 뚫고 나타난 그는 분명 예전의 모범생 가수가 아니었다. 어깨에 닿는 머리 스타일과 귀고리까지. 어느덧 20대 후반이 된 ‘버터왕자’는 학생 가수로 남긴 싫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뭘 해도 촌티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웃었다.
“음반 작업하면서 미용실에 거의 가지 않아 머리가 자란 거예요. 그나마 변화를 주고 싶어 얼마 전 신촌에서 귀를 뚫었는데 27세에 귀 뚫는 남자는 저밖에 없을 겁니다.”
데뷔 6년간 그는 푸근한 모습으로 발라드만 불러왔다. ‘모범생’ ‘아날로그 가수’ 등 느릿한 것들이 그의 대명사처럼 자리했고 “늘 똑같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변화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서른’이었다.
“5집 만들면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음악 공부 군대 그리고 결혼까지. 20대 때 몸 바쳐 5장의 음반을 냈지만 30대가 되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1년 6개월 만에 발표한 5집 ‘더 발라드’는 “어떻게 하면 한 명에게라도 내 진실된 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까”란 고민에서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음악을 대량 소비하는 시대잖아요. 이문세 신승훈 선배처럼 영향력 있는 발라드 가수들이 사라지고 있고 아날로그 감성은 쾨쾨한 옛것이라 치부되죠. 전 그 끝자락에 서서 디지털 문화의 병폐를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의 결론은 ‘정공법’. 1분 만에 귀를 솔깃하게 하는 편법 대신 4분 전체, 수록된 16곡 전체의 기승전결에 더 신경을 쏟았다. 타이틀곡 ‘거리에서’를 비롯해 하림이 작곡한 ‘바람, 그대’, 작곡가 김형석이 팝 가수 스팅을 염두에 두었다는 ‘새로운 버릇’ 등은 한 편의 수채화처럼 투명하다. 모든 것은 처음으로 프로듀싱을 맡은 그의 의도대로다. 촌티 나는 아날로그 앨범, 그것이다.
“제 앨범이 출시되는 날 옆에는 신승훈 선배의 10집도 함께 놓여있을 겁니다. 술자리에서 선배가 그러더군요. ‘정통 발라드가 여전히 통한다는 걸 보여 주자’고요. 아직도 6∼7분짜리 발라드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신기한가요? 그게 발라드의 힘이에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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