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미소' 진행하는 '팔방미인' 성전 스님

  • 입력 2006년 10월 11일 15시 25분


"미소는 마음속 진창에 연꽃 한 송이 피우는 일입니다….아, 방금들어온 속보입니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는데요…보도국을 연결합니다. 박○○ 기자!"

11일 오전 9시11분 서울 마포구 불교방송국 17층 주조정실. 장삼 벗어던지고 머리에 헤드폰을 낀 성전 스님도 돌발적인 속보상황에 긴장한다. 하지만 정작 더 마음을 졸이는 사람은 쪽지를 전달한 최윤희 PD. 불교방송 FM(BBS·101.9MHz) '행복한 미소'를 진행한 지 1년5개월. 방송중 속보생방을 물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 방송인도 사건 생방송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청취자들에게 잔잔한 명상의 불법을 전달하던 성전 스님은 곧 '앵커맨'으로 변신했다. 최 PD가 손을 들어 "잘 하셨다"고 사인을 보낸다.

성전 스님은 '팔방미인'이다. 조계종 기획국장 시절 짬짬이 방송에 출연한 것이 인연이 돼 오전 9시5분~10시까지 '행복한 미소'를 진행하는 MC가 됐다. 방송인이 아니라 말이 가끔씩 씹히기도 하고 매끄럽지 않을 때도 있지만 청취자들은 꾸밈없는 성전스님의 포근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스님→앵커→MC→DJ로 변신을 거듭하던 스님이 이번에는 성우로 변신했다. 작가 오영수 의 1952년작 '화산댁이'을 라디오 드라마로 극화한 것이다.

"아부지, 이건 누꼬"(손녀)

"할매다"(아들)

"우리 할매? 이기 우리 할매 아이다"(손녀)

"나하고는 처음보니 이리오너라 보자"(화산댁)

(그러나 손녀는 제 아버지 등뒤에 슬그머니 숨어버린다)

"내가 온김에 안사돈을 한 번 뵈야지"(화산댁)

"뭐라카는기요, 냄새시럽구로"(아들)

몇 년만에 도회지의 아들을 찾은 시골 할매 화산댁을 대하는 아들가족의 차가운 시선을 그린 화산댁이를 1인4역으로 소화한 스님이 이렇게 청취자들에게 묻는다. "학교에 오신 어머니가 촌스럽다고 멀리 도망간 적은 없습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스님은 때로 가수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말과 올 봄 공개방송, 지난달 29일 오픈 스튜디오에서 그는 유익종의 '그저 바라볼 수만 있다면'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가수 뺨치게 불러제껴 청취자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인터넷 카페에 팬클럽까지 만들어졌다. "9월 29일 새벽 4시 50분 기상 알람보다 10분 일찍 일어났다. '행복한 미소' 공개방송을 보기 위해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첫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도중에도 내 심장은 기대에 찬 환희로 떨려오고 있었다." 행복한 미소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처럼 스님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 어린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전스님이 '스타'가 된 것은 '끼' 때문이 아니다. 그는 우리 이웃의 지난한 삶을 불법(佛法)과 명상으로 우려낸 뒤 사유(思惟)의 철학, 감성의 언어, 시(詩)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 정수는 휴머니즘이다. 수십년 관조의 삶에서 배어나온 '산' '강' '별' '배려' '용서' '사랑'과 같은 따스한 언어들이 전파를 타고 매일 청취자들의 마음을 데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