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유럽인들 발레로 ‘춘향전’ 봤다

  • 입력 2006년 10월 12일 03시 00분


1956년 핀란드에서 초연된 ‘사랑의 시련’ 팸플릿. 주인공인 춘향의 이름이 ‘Chung Jang’(충양)으로 표기돼 있다(왼쪽). ‘사랑의 시련’ 당시 공연 장면. 사진 제공 김승열 씨
1956년 핀란드에서 초연된 ‘사랑의 시련’ 팸플릿. 주인공인 춘향의 이름이 ‘Chung Jang’(충양)으로 표기돼 있다(왼쪽). ‘사랑의 시련’ 당시 공연 장면. 사진 제공 김승열 씨
서양 발레단이 1950년대 중반 ‘춘향전’을 토대로 발레를 만들어 유럽 각국에서 공연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처음 발굴됐다.

연극평론가 김승열(프랑스 파리 제8대학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씨는 최근 “핀란드 국립발레단이 1956년 춘향전을 소재로 한 발레 ‘사랑의 시련’을 헬싱키에 있는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사실을 알려주는 당시 팸플릿과 공연 사진을 발레단으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혔다. 핀란드 국립발레단은 당시 연습 과정의 일부를 담은 흑백 동영상 필름도 소장하고 있다.

이 팸플릿에는 ‘대본: 미하일 포킨, 안무: 미하일 포킨의 안무를 조르주 제가 재구성’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동안 세계적인 안무가 미하일 포킨(1880∼1942)이 ‘춘향전’을 소재로 발레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한 자료는 지금까지 전무했다.

포킨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발레 솔로인 안나 파블로바의 ‘빈사의 백조’, 전설적인 발레리노 니진스키를 위해 만든 ‘페트루슈카’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러시아 출신 안무가. 포킨이 1936년 ‘춘향전’을 토대로 ‘사랑의 시련’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일부 발레 문헌에 기록돼 있지만 작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원로 무용평론가 박용구 씨는 “이번에 발굴된 ‘사랑의 시련’은 한국 고전을 소재로 해외에서 무용으로 만들어진 작품 중 자료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며 “포킨의 ‘사랑의 시련’을 엿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존 자료라는 점에서 한국 무용사에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사랑의 시련’은 이번에 함께 발견된 1995년 공연 팸플릿에도 ‘1956년부터 1968년까지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랑스 파리, 영국 에든버러, 독일과 헝가리 등에서 선보였다”고 기록돼 있어 1950년대 중반∼1960년대 후반 유럽 무대에서 활발히 공연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랑의 시련’은 1시간 분량의 단막 작품으로 음악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6번 등을 사용했다. 공연 팸플릿에는 핀란드어로 여주인공 이름이 ‘Chung Jang’(충양·J가 Y로 발음됨)으로 적혀 있으며 ‘충양(춘향)’ 역은 발레리나 마이리스 라얄라가 맡았다. ‘이도령’은 ‘젊은이’로만 등장하고 ‘변사또’는 ‘자만심 강한 서양에서 온 대사’로 바뀌었다. 배경도 ‘옛날 머나먼 아시아에서’로만 돼 있고 무대 의상에서는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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