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문학의 본질이 인간의 내면 또는 작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시선은 이 작품에서 더욱 밀도 있고 적극적으로 펼쳐진다. 사진작가 이한구 씨의 작품사진이 어우러져 분위기를 더한다.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궁금해 하면서 20대 중반부터 심리학이나 정신분석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그 분야의 책이 귀했고 대부분이 딱딱한 개론서였으며 대중독자로서 접근하기에는 난해한 개념이나 용어가 자주 발에 걸렸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기술한 책은 없을까 꿈꾸곤 했다. 그로부터 20년쯤 흐른 후 이 에세이를 쓰면서 그때 꿈꾸었던 책을 떠올리곤 했다."
작가는 혼자 몸으로 로마, 피렌체, 밀라노, 파리, 니스, 베이징, 적도 아래의 뉴칼레도니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시와 항구를 성큼성큼 걸어다니면서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추악한 사람들, 풍경, 예술의 면면을 확인한다. 그 모습들이 고스란히 작가 자신의 심리가 투영된 대상이 되어 한 편 한 편의 글에 녹아있다.
로마의 뒷골목에 텐트를 치고 그림을 그리며 도둑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에서 무의식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여행자의 지갑을 노리며 역 주변을 서성이는 청년들의 눈빛, 당당하게 손을 내미는 집시들의 눈빛과 대치하면서 시기심의 본질을 이해한다. 뉴질랜드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뻗어가다 끊긴 다리를 바라보며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 싶어 하는 회피 방어심리를 깨닫는다. 로댕 박물관 한쪽에 마련된 카미유 클로델 전시실에서 고민해본 클로델의 삶과 예술에 관한 사유 역시 작가 자신의 삶과 관련된 것이었다.
진솔한 산문집에서 작가의 많은 '마음'들과 만날 수 있다. 마흔 고개에 집까지 팔아서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난 작가의 '마음', 활자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 오감을 활짝 열고 바깥 세계를 안쪽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마음', 자신의 왜곡된 심리와 억압과 상처와 어둠까지도 선입관 없이 직시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려 하는 '마음', 그리고 이제 그 여행에서 만난 것들을 자신의 마음과 함께 정리하는 작가의 '마음'까지….
한 층 한 층 벗겨내며 읽다 보면, 인간 심리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솔직하고 객관적인 분석, 그리고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밀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불안과 회의, 결핍과 갈망 속에서도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려 하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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