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은 터키작가 파묵

  • 입력 2006년 10월 12일 20시 21분


스웨덴 한림원은 12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림원은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54세의 파묵은 여러 작품 속에서 그가 태어난 도시의 멜랑콜리 정신을 추구하면서 문화의 충돌과 교차가 빚어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그려냈다고 밝혔다.

한림원은 수상 공적서에서 “파묵은 성장하면서 전통적인 옛 터키제국의 가족 환경에서 보다 서구 지향적 라이프스타일로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해왔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그가 첫 번째 발표한 소설에 썼다. 이 소설은 토마스 만의 정신 속에서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발전 과정을 추적해가는 가족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묵이 국제적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은 그의 세 번째 소설 ‘하얀 성(The White Castle)’(1991년)을 발표하고나서였다. 이 소설은 17세기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자아(ego)가 다양한 이야기와 픽션 위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인격(personality)이란 변할 수 있는 구성물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림원은 말했다.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인 파묵은 올해 1월 '터키의 정체성(Turkish identity)'를 모독했다는 혐의(터키 형법 위반)로 소송을 당했다. 그는 또 살만 루시디의 ‘처형 판결’에 반대해 이슬람 칙령을 비난한 이슬람 세계의 첫 작가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스웨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터키에선 어느 누구도 제1차 세계대전기간에 저질러진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 살해나 최근 수십년에 걸친 3만 명의 쿠르드족 살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고 '폭로', 터키 민족주의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하얀 성' 외에도 '새로운 인생'(1997), '내 이름은 빨강'(2001), '눈'(2004) 등이 있다.

파묵은 베스트 셀러인 '내 이름은 빨강'이나 '눈'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간 충돌을 묘사했다. 이런 충돌양태는 발전을 위한 터키의 몸부림 과정에 가로놓여 있는 문제다.

노벨문학상의 수상으로 파묵의 이름은 세계 무대에 갑작스럽게 솟구치게 됐다. 그의 옛 소설들이 재판 발행되고 엄청난 부수가 팔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파묵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 40여명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알려졌었다.

파묵은 노벨상 제정자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1000만 크로네(미화 140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금메달과 노벨상증서를 받게 된다.

오르한 파묵 연보

△1952년 터키 이스탄불 출생

△1979년 첫 소설 '제브뎃 씨와 아들들' 밀리엣 신문 공모 당선

△1984년 '고요한 집'으로 마다랄르 소설상 수상. 프랑스 '유럽 발견상' 수상

△1985년 '하얀 성' 발표. 이 소설로 국제적 명성 얻게 됨

△1985~1988년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교수

△1994년 소설 '새로운 인생' 발표

△1998년 소설 '내 이름은 빨강' 발표.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과 아일랜드 '인터내셔널 임팩트 더블린 문학상' 수상

△2002년 소설 '눈' 발표

△2005년 소설 '이스탄불: 추억과 도시' 발표

디지털뉴스팀·스톡홀름=AFP AP

고은 시인 "타인의 향연을 축하합니다"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닌 듯 합니다. 타인의 향연을 축하합니다. 지금 한반도는 이겨내야 할 시련을 맞고 있습니다. 내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12일 아침 고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던 13일 오후 8시, 고은 시인은 경기도 안성 자택에 없었다. 대신 자택 대문 옆 담장 위에는 컴퓨터로 작성해 A4용지에 프린트한 짧은 메모가 취재진을 위해 놓여있었다.

고은 시인의 부인 이상화 교수(중앙대 영문학)는 이날 오후 3시 경 전화 통화에서 "선생님이 아침에 강연이 있어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취재진을 위한) 메모를 주고 갔다"며 "메모를 대문 옆에 올려놓을 테니 그걸 보시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는 수상 소식이 발표되기 전인 오후 4시경부터 놓여 있었다. 오후 4, 5시부터 하나 둘씩 집 앞에 모이기 시작한 80여명의 취재진은 고은 시인의 메모를 읽고도 '혹시나'하며 발표가 나는 순간까지 집 앞을 계속 지켰다.

노벨상 수상 축하 잔치까지 준비했던 지난해와 달리 이날 고은 시인의 집 앞에는 마을 주민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인근 주민 윤덕순 씨는 "올해는 그냥 차분하게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후 8시, 오르한 파묵의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취재진들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고은 시인의 자택은 거실에만 불이 켜져 있었으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은 시인은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지방에 내려가 하루 종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웃집 주민인 이종식씨(41)은 "올해는 꼭 수상하길 바랬는데 너무 아쉽다"면서 "고은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가 외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그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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