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던 13일 오후 8시, 고은 시인은 경기도 안성 자택에 없었다. 대신 자택 대문 옆 담장 위에는 컴퓨터로 작성해 A4용지에 프린트한 짧은 메모가 취재진을 위해 놓여있었다.
고은 시인의 부인 이상화 교수(중앙대 영문학)는 이날 오후 3시 경 전화 통화에서 "선생님이 아침에 강연이 있어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취재진을 위한) 메모를 주고 갔다"며 "메모를 대문 옆에 올려놓을 테니 그걸 보시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는 수상 소식이 발표되기 전인 오후 4시경부터 놓여 있었다. 오후 4, 5시부터 하나 둘씩 집 앞에 모이기 시작한 80여명의 취재진은 고은 시인의 메모를 읽고도 '혹시나'하며 발표가 나는 순간까지 집 앞을 계속 지켰다.
노벨상 수상 축하 잔치까지 준비했던 지난해와 달리 이날 고은 시인의 집 앞에는 마을 주민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인근 주민 윤덕순 씨는 "올해는 그냥 차분하게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후 8시, 오르한 파묵의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취재진들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고은 시인의 자택은 거실에만 불이 켜져 있었으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은 시인은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지방에 내려가 하루 종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웃집 주민인 이종식씨(41)은 "올해는 꼭 수상하길 바랬는데 너무 아쉽다"면서 "고은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가 외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그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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