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좌우명은 '창작시 첫째도 인내, 둘째도 인내, 셋째도 인내'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을 주로 번역한 이난아 씨는 "마치 바늘로 우물을 파듯, 소설 한 줄 한줄 고치는데 끈질기게 열중 한다"며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저녁에는 만년필 뚜껑을 열어 잉크의 양을 확인할 정도"라고 말했다.
'내 이름은 빨강', '고요한 집', '눈', '하얀 성' 등 그의 대표작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속주의, 세계화와 지역주의, 서구문명과 동양문명, 신과 인간, 진보와 보수 등 묵직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이질적인 문화의 갈등과 소통'을 다뤘다. 그의 조국 터키가 서양 문명의 교차로에 있다는 지정학 요인이 그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접점에 자리하며 동서 문화가 교차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고 파무크씨는 작품들을 통해 동서양 문화의 소통을 모색했다.
1985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 '하얀성'은 이스탄불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교류를 통해 동서양의 소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신(神) 중심의 회화기법인 이슬람 세밀화와 인간 중심의 서양화 스타일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 '내 이름은 빨강'(1998년)은 추리소설과 연애소설이라는 이질적인 양식을 정교하게 교직해 나간다. 오스만제국의 위대한 도시 이스탄불을 무대로 한 세밀화가들의 음모와 배반사랑을 다뤘다. 이 책으로 그는 2002년 프랑스의 '최우수 외국문학상', 2003년 이탈리아의 '그린차네 카보우르상', 같은 해 아일랜드의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을 받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다.
2002년 발표된 소설 '눈'도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세속주의자들의 충돌을 다뤘다. 폭설로 길이 차단된 터키의 국경 도시 카르스에서 사흘 만에 막을 내린 국지적인 쿠데타를 줄기로, 신과 인간, 종교와 정치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름다운 설경과 함께 전개된다.
파묵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번역한 이난아 씨는 "건축가가 건물을 세우고 창을 만들고, 마루를 놓듯 그는 모든 치밀한 계획 하에 글을 쓰며 그 안에 정교한 지적 재미가 스며 있다"고 말했다.
그의 책을 출간한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터키의 이문열'이라 할만한 작가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췄으며 아랍식 이야기전통과 모던한 현대 소설 기법을 결합시켜 아랍문학의 경지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요즘은 사랑하는 사촌 여자의 팔찌, 귀고리 등을 모아 박물관을 짓는 한 남자의 집착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순수 박물관'을 집필 중이다.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펜을 드는 그는 이렇게 자주 말한다고 한다. "언제 영감의 요정이 내 등을 두드리고 귀에 속삭일 줄 모릅니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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