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방송 비상상황에 속수무책…“지상파 초유 사고”

  • 입력 2006년 10월 16일 03시 00분


14일 오후 11시 8분경 KBS 2TV의 ‘위기탈출 넘버원’ 방영 도중 화면과 소리가 나오지 않는 등 20여 분간 정규 방송이 중단되는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전영한 기자
14일 오후 11시 8분경 KBS 2TV의 ‘위기탈출 넘버원’ 방영 도중 화면과 소리가 나오지 않는 등 20여 분간 정규 방송이 중단되는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전영한 기자
KBS 대형 방송사고의 주범은 디지털 방송신호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전환해 남산송신소로 송출하는 디먹스(Demux)라는 장치다. 하지만 사고 20여 분이 지나서야 방송이 정상화됐다는 사실은 KBS의 ‘비상대처능력’에 큰 허점이 뚫렸음을 보여주는 사례란 지적이 많다.

디먹스는 컴퓨터의 메인보드와 유사한 모양의 장비로, KBS 본관 주조정실에 있는 ‘디지털 비디오 인터페이스 유니트’ 기계 내부에 장착돼 있다.

KBS 측은 사고가 나자 ‘디지털…’ 기계의 전원을 뽑고 다시 연결해 보는 등 재가동을 시도했지만 작동하지 않자 예비장비인 다른 디먹스로 교체해 오후 11시 29분경 ‘드라마시티’ 방영을 재개했다.

일본 소니사가 제조한 이 장비는 1996년 6월 28일 구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KBS는 평상시 예비 디먹스 2개를 포함해 총 3개를 보유하고 있다. KBS 측은 “장비의 노후화도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정확한 것은 16일 소니코리아에 장비를 의뢰해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방송사고에 대비해 2005년부터 비상상황 매뉴얼인 ‘매체별 SOP(Standard Operation Procedure)’를 주조정실에 마련했지만 신속한 복구와 방송재개에는 무용지물이었다. KBS 남성우 편성본부장은 “책임자 문책은 조사를 더 해야 가능하겠지만 우선 문제가 된 장비의 점검 소홀 여부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KBS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는 방송중단 사태에 대한 놀라움과 늑장대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폭주해 15일 오후 3시간가량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시청자 이성주(아이디 tlvkfwnrdu) 씨는 “그때 북한에서 KBS에 핵실험을 한 줄 알았다”면서 “양해만 바란다고 자막만 띄우고 사고 대처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김준홍(아이디 kjhnwo) 씨도 “KBS는 9월에도 작은 방송중단 사고가 두 차례나 있었는데 이번엔 무려 20분”이라면서 “이런 사고의 반복이 공영방송의 신뢰감을 떨어뜨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시청자들도 “20여 분의 대형 사고는 요즘같이 현대화된 비싼 기계를 사용하는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치명적인 오점”이라며 “지상파에서 이런 방송사고는 처음이다. 잠시 케이블 TV나 DMB로 착각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방송위원회 김우룡 위원은 “국가 기간방송이 이렇게 장시간 중단된 사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KBS가 후임 사장을 제대로 선출하지 못해 경영진의 공백상태가 길어지면서 방송사의 기강 해이와 관리 부재의 현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외부인의 돌발행위가 아닌 방송사의 기술적 결함과 실수로 인해 지상파TV 전국방송이 20여 분이나 중단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999년 6월 영상합성기 고장으로 MBC ‘뉴스데스크’가 3분간 화면이 끊기는 사고가 있었고 2001년 5월 KBS1 ‘아침마당’이 전원공급 시스템 장애로 2분간 방송이 중단되는 등 몇 차례 사고가 있었지만 모두 2, 3분 안에 복구해 방영을 재개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