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0월 18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교회. 겉보기엔 평범한 장례식이 열렸다. 74세 노인의 사인은 심장마비. 대변인이 “편안히 숨을 거뒀다”고 발표한 호상(好喪)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엄숙을 넘어 삼엄하기까지 했다. 조문객의 검은 양복 속엔 기관총이 있었다. 바깥에선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과 사복경찰이 눈을 번득였다. 뉴욕 마피아 ‘보스 위의 보스’, 카를로 갬비노는 그렇게 땅에 묻혔다.
20년간의 통치 기간 중 수많은 저격과 도전에도 암흑가의 권좌를 지켜낸 갬비노. 뉴욕 5대 조직의 수장으로 전국 마피아에 힘을 행사했지만 경찰에 체포된 적은 없다. 영화 ‘대부’에서 말런 브랜도가 맡았던 ‘비토 콜레오네’의 실제 모델이다.
“I'm gonna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절대 거절 못할 제안을 하나 하지).”
콜레오네의 잊지 못할 대사는 갬비노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닮았다. ‘스카페이스’ 알 카포네나 ‘황제’ 찰스 루치아노와 달리 옆집 아저씨처럼 생겼다. 이전 보스에게 뺨을 맞을 뻔할 때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동료들이 ‘겁쟁이’라 비웃었지만 그는 인내했다.
권력을 잡은 뒤에도 갬비노는 노련했다. 마피아 보스가 대통령보다 무섭던 시절, 직접 시민을 만나 민원을 해결해 줬다. 성당에 도둑이 들자 다음날 물건을 찾아주기도 했다. 민심은 경찰로부터 암흑의 제왕을 지켜줬다.
갬비노는 미소라는 주머니 속에 숨겨진 칼날이었다.
항구와 공항을 장악하고 화물을 빼돌렸다. 마약에 손대진 않았지만 세금을 거뒀다. 배신자에겐 히트맨(암살자)을 보냈다. ‘거절 못할 제안’은 살인 협박이었다. 그렇게 쌓은 마피아의 부는 “모든 미국인의 의식주와 정신에 영향을 끼쳤다.”(범죄연구가 마이클 우디위스)
마피아의 성장은 미국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마피아의 이권 개입은 경찰과 정치권의 비호 덕택에 가능했다. 거액의 자금을 정치권에 댔고 정치인에 대한 테러를 대신했다. 사회불안의 원흉으로 탓하기도 좋았다. 마피아는 달콤한 사탕이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얽혔던 관계. 마피아는 당시의 미국이 악마에게서 건네받은 ‘거절 못할 제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