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다!” 깔끔한 슈트 차림의 이준기가 등장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의 하이라이트.
김태희, 수애, 엄정화, 정우성 등 영화계 스타들의 행렬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영화제의 레드카펫. 서양에서는 역사가 길다.
1929년 미국 아카데미상이 생긴 이래 레드카펫은 스타와 팬이 만나는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연기자들에겐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 됐다.》
국내에서는 대종상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이 활성화되면서 레드카펫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파티문화의 확산으로 ‘애프터 식스 스타일(퇴근 후의 파티 스타일)’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커지면서 스타들의 레드카펫 패션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사실 스타들은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레드카펫 드레스를 택하지는 않는다. 철저한 ‘연구’와 ‘검증’을 거친다. 출연한 영화의 캐릭터에 맞게, 혹은 트렌드 세터로 보이기 위해 콘셉트를 정하고 여러 후보 드레스 중 한 벌을 택한다.
레드카펫 스타일을 준비하는 기간은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걸린다.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국내에서 찾지 못하면 해외에서 공수라도 해온다. 다른 스타와 같은 브랜드 옷을 입기 꺼리기 때문에 인기 드레스를 두고 ‘눈치작전’도 벌어진다.
국내 최고 스타일리스트들이 심혈을 기울인 부산국제 영화제 레드카펫 패션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아하고 섹시한 블랙
우선 눈길을 끈 스타는 ‘J 린드버그’의 롱 블랙 드레스를 입은 엄정화. 앞모습은 목까지 올라온 우아한 여신 스타일, 뒷모습은 등이 과감하게 파인 섹시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머리는 보이시한 짧은 커트로 생기있는 모습을 연출했다.
엄정화를 맡은 정윤기 스타일리스트는 “한 달 전부터 콘셉트를 정하고, 15∼20벌을 후보감으로 올려놓은 뒤 최종 리허설 끝에 선택한 의상”이라고 설명했다.
‘구미호 가족’으로 영화에 데뷔해 처음으로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박시연은 ‘샤넬’의 블랙 미니드레스를 입고 귀여운 이미지를 뽐냈다.
박시연의 스타일링을 맡은 박희경 스타일리스트는 “영화 데뷔 후 처음 레드카펫을 밟는 만큼 캐주얼하고 발랄하게 보이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역시 블랙 미니드레스를 선택한 한채영은 어깨를 드러낸 ‘로에베’ 드레스를 입고 섹시미를 자랑했다.
한채영의 스타일리스트인 최희진 씨는 “현재 홍보하는 영화가 없기 때문에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려 했다”면서 “일부러 목걸이, 귀고리 등 액세서리를 뺐다”고 소개했다.
개성 강한 NO블랙
12월 개봉 예정인 ‘중천’의 커플 김태희와 정우성. 부산 레드카펫에서도 나란히 팔짱을 낀 채 등장해 시선을 모았다. 이날 김태희는 ‘알베르타 페레티’의 스킨 베이지색 하늘하늘한 시폰 드레스에 자연스러운 웨이브 머리를 했다.
스타일링을 맡은 김효성 스타일리스트는 “판타지 영
화 ‘중천’에서 ‘중간세계’를 정화하는 천사 같은 캐릭터”
라며 “영화 속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두 달 전부터 드레
스 물색 작업을 벌였다”고 말했다.
개봉이 임박한 ‘그해 여름’의 수애는 ‘Y&Kei’의 그레이 드레스를 입고 청순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매력을 과시했다. 그레이 시폰드레스 안에 금사로 된 천이 덧대어져 있기 때문.
정윤기 스타일리스트는 “동양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과 드레스로 꾸몄다”고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가을로’의 엄지원은 ‘구찌’의 강렬한 레드 드레스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레드 드레스는 박유라 스타일리스트가 행사 이틀 전 싱가포르에서 공수해 온 것. 영화에 같이 출연한 김지수가 블랙을 입어 일부러 레드를 택했다는 후문이다.
김민정은 깜찍한 ‘질스튜어트’의 보라색 미니드레스에 반짝이 스타킹을 신어 주목을 받았다. 펑키한 개성을 살리기 위해 고민정 스타일리스트가 일부러 치마 길이를 더 줄였다. 무려 4억 원가량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포인트를 준 게 특징이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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