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 중 하나는 아직도 1970, 80년대 대학가요제 노래를 듣는 것이다. 당시 노래를 들어 보면 유명세를 치른 곡이건 아니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선 수상에 실패한 곡이 인기가요로 오늘날까지 사랑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때 그 사람’이 대표적이다. 대학가요제는 열정, 순수성, 창의성, 매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한국 가요의 젖줄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 같은 유사한 이벤트도 계속 생겨났고 여기서도 좋은 노래가 양산됐다.
감동적 노래 사라지고 모방품만
대학가요제가 어느덧 30주년이 됐다. 언제부턴가 대학가요제는 과거의 명성과 위세를 잃어 갔다. 아직도 매력적인 이벤트이고 좋은 곡이 간혹 나오긴 한다. 그러나 몇 년 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심수봉 씨가 요즘 대학가요제 노래에 대해 선배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솔직한 언급은 정곡을 찌른다. “저희 노래 부를 때처럼 ‘짠한’(감동적인) 노래는 없네요.”
대학가요제는 사람들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저 그런 가요제로 전락했다. 얼마 전 열린 올해 무대도 ‘이해할 수 없는 심사 결과’ 정도가 얘깃거리가 됐다. 왜 그럴까?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대학가요제 대상 곡 ‘잘 부탁드립니다’처럼 과거의 명성을 잠시 확인하는 순간도 있었다.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신선한 음악, 수준급의 가창으로 반짝 열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시 예년의 평범한 수준으로 돌아갔다.
근년의 대학가요제에 나오는 노래는 대부분 구태의연하다. 젊은이다운 창의성은 찾기 힘들고 다 비슷비슷하거나 기존 가요의 모방에 그친다. 잊기 쉬운 음악이 양산된다. 대학가요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툭하면 랩 몇 마디 부르고 가끔가다 (문법에도 안 맞는 국적 불명의) 영어 몇 마디 하면 최첨단 음악인 줄 착각하는 팀이 많았다. 올해 수상 곡에서조차 수준 이하의 곡이 있었다. 심사위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대학가요제가 사랑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상을 받아야 할 곡이 받았다는 점도 있었다.
이런 상황은 요즘 대학의 풍속도를 보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다양성과 진취성보다는 오히려 획일성과 안정성을 선호한다. 안정지향적인 대학과 전공 선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래 희망도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고시를 통한 입신양명, 의사 약사 교사와 같은 자격증 선호, 유명 컨설팅 회사 직원이나 돈 좀 만지는 펀드매니저,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또는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공기업 직원. 이런 직업에 목매는 사람이 넘쳐 나는 획일화된 문화가 현재 한국 대학의 자화상이다.
외환위기의 충격 이후 이런 문화가 강해졌고 숨 막히는 청년실업이 이런 현상을 부채질했기에 대학생만 탓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도가 심하다. 개방적이고 패기만만하며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젊은이가 창의성을 상실한 채 따분해져 가는 분위기가 대학가요제의 천편일률적인 노래에 투영된 것은 아닐는지.
도전정신으로 다시 부활하길
도전의식이나 실험정신의 부재, 노래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진지함의 부족이 요 몇 년간 낮아진 대학가요제의 수준을 설명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대학가요제는 그냥 사라지기에는 정말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대학가요제가 50주년, 100주년을 맞고 그때도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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